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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Jun 18. 2017

진짜 나의 것

내가 좋아하는 그 순간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독일에 온 지 꼬박 15일이 지났다. 한 달이 안되었지만, 체감은 2~3개월은 된 듯하다. 아마도 '이젠 알 것 같아~'라고 생각되는 아주 극소의 부분에서 2~3개월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독일에 대해서 1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 독일의 문화에 대해서 한국어로 말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있어 간접체험이 가능하지만 그것도 나의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져만 간다. 15일 동안의 독일 생활에서 느낀 것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정확하게는 독일 생활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베를린에서 4일, 함부르크에서 3일, 뒤셀도르프에서 1일 여행했고 여전히 이방인, 여행객의 입장에서 독일을 바라보았으니 그렇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고 표면적인 경험이 아닌 독일의 깊숙한 면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굉장히 막연했다. 그 막연함이 주는 의외의 상황들도 많았지만 막연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여행을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경험해보지 않은 초보인지라 더욱 '무엇'을 하는 것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나의 여행에서는 '무엇'에 집중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느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틀어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베를린 젠다르멘 광장에 있는 '콘체아트하우스 베를린(Konzerthaus Berlin)' 앞 계단에 앉아 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내 앞에 앉아있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스케치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내 얼굴에 스치는 바람결에 기분이 좋아져 '아 좋다~'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했던 그 순간이다. 이 것이 기쁨이었다. 이 것이 나에게 온 기회였던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질 오케스트라 연주보다도 그 순간이 좋았으니 말이다:)


베를린에서 커리부어스트(소시지를 토마토케첩 소스에 비비고 그 위에 카레가루를 뿌린 일종의 간식)를 하루에 한 번은 먹은 것 같다. 소시지와 케첩의 조합이 맛이 없을 수가 없는데 역시 맛이 없는 곳도 있기는 했다. 손 맛이 있음에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하루는 베를린 미술 대학교를 방문했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정원이 소규모였지만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냥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잔디 위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서 토론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트북과 책을 펼쳐놓은 이들도 있었고 또 다른 사람은 벽에 기대어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그 자체가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부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함부르크에서는 지역적인 특색보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계기였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였던 그 시간이 나에게 더 기억에 남는다. 룸메이트는 영국, 호주, 프랑스, 오스트리아, 말레이시아, 케냐, 한국 이렇게 7명이었다. 한 명도 겹치지 않았다. 가장 많은 배려를 해주셨던 분은 영국에서 오신 제리였다. 그분 덕분에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숙소 아래 Bar에서 시간을 가졌다. 우리 방 사람들 몇 명과 옆 테이블에 혼자 있었던 짐바브웨에서 온 한 사람과 캐나다 사람까지 합류해서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를 했다. 이들의 공통 언어는 영어였고 그 대화에서 나만 제외되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었던 것이 아니라 보았다. 몇 분 지나니 짐바브웨人이 너는 왜 말을 안 해?라고 물어봤고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라고 답변을 했지만 그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캐나다人이 구글 번역기를 소개해줬고 그걸로 조금은 어색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입은 닫혀있었고 그들은 나의 말을 보았다. 나 역시 그들의 말을 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알 수 있었고 만국 공통어인 영어의 필요성과 프랑스人이 나에게 '너는 영어보다 독일어가 더 나은 거 같아'라는 말을 듣는 굴욕을 선물 받았다. 영어는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언어이고 독일어는 독일 오기 전 한국에서 4개월 배운 언어라는 것에 왠지 모를 영어에 대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어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투지를 다지게 되었다. 


뒤셀도르프에 있는 현대미술관(K21,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베를린에 있을 때, 나는 버스 안에 있었고 밖에 지나가는 분을 보고 '어 저분 한국사람 아냐?'라고 생각했던 분을 미술관에서 만났다! 그냥 모르는 척할까 했지만 이것도 인연이라고 말을 걸었고 베를린에서 봤다고 하면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인생은 이런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간접 경험이 아닌 직접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젠,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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