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매년 가을에 열리는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는 1903년부터 시작된 미술전시회로 왕실이 주최하는 기존의 ‘살롱’전과는 달리 젊고 진보적인 화가들의 전시회이자 데뷔무대이다. 3회째인 1905년 가을에는 397명의 작가가 1,6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출품하면서 프랑스 최대의 전시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특히 1905년에 열린 살롱 도톤느의 제 7전시실은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로 대표되는 야수파의 데뷔 무대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화상(컬렉터)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Daniel-Henry Kanweiler),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는 살롱 도톤느를 주목했고 그 당시 저평가된 유망한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이고 이들을 후원하면서 현대미술을 살찌우고 이들의 예술 혁신을 촉진했다.
당시 컬렉터들의 후원이 어떠했냐면, 스타인은 1905년 당시 마티스가 출품한 ‘모자를 쓴 여인’을 사들였고, 앙드레 드랭의 작품에 푹 빠진 볼라르는 드랭에게 런던에서 새로운 시대를 그려달라고 요청하여 걸작 ‘빅벤’과 ‘하이드 파크’가 탄생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베르나르 뷔페가 프랑스에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도 다름아닌 살롱 도톤느이다.
파블로 피카소 또한 살롱 도톤느에 출품된 작품들에 자극을 받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스타인의 열렬한 지지와 후원에 힘입어 현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입체파(큐비즘)’를 탄생시키게 된다. 지금까지도 살롱 도톤느는 젊고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을 선도하는 장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즉, 살롱 도톤느는 예술가들에겐 본인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이들을 후원해줄 컬렉터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인 셈이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살롱 도톤느와 같은 혁명이 없을까? 자신의 컨텐츠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동시에 컨텐츠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후원자와 연계하는 그런 플랫폼 말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글을 남기고 있는 카카오 브런치가 살롱 도톤느처럼 컨텐츠 제작자의 지속적인 글쓰기와 커리어 확장을 돕는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201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서 탄생한 여러 플랫폼 중 가장 의미있는 혁신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브런치 이전에 수많은 글쓰기 플랫폼들이 존재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네이버 블로그가 그랬고 카카오의 경우도 다음에서 운영하는 티스토리 블로그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광고판으로 변질되었고 결과적으로 컨텐츠 소비자들이 정말 원하는 내용을 제공하지 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는 고품질의 글이 주목받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파워블로그의 글은 퀄리티와 상관없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소위 말하는 네이버 지수가 높은 블로그일수록 검색 상위 노출이 되기 때문에 컨텐츠의 퀄리티와 조회수의 상관관계가 낮은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의 가장 큰 혁신은 퀄리티 있는 글이 주목받게끔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작가에게 도서 출판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도 혁신이다. 매년 열리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 수상자에게 출판사와 연계하여 출판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작가의 프로필에 있는 ‘제안하기’ 버튼을 통해 브런치 작가들에게 출판, 강연 요청 등 여러 제안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작가 유저들에게 큰 메리트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글쓰는 플랫폼으로 브런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정립된다는 점도 앞으로 브런치가 성장하는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블로거가 아닌 ‘작가’ 타이틀을 부여하면서 도서 출판 유무를 떠나 작가라는 아이덴티티를 스스로 갖게 되는 점도 글쓰는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출판과 제안하기 뿐만 아니라 ‘브런치’의 가장 큰 매력은 플랫폼의 메인 노출 빈도가 높다는 점이다. 내 경험을 공유하면 내가 쓴 글이 카카오 페이지와 ‘다음’ 메인에 노출되면서 글 하나로 하루에 수 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경험이 여러차례 있었다. 내가 무심코 쓴 글이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흥분되면서 두려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은 글에 대한 책임감으로 작용했다.
메인에 여러차례 내 글이 노출된 이후에는 굉장히 신중하고 진지한 자세로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메인에 노출된 경험과 글에 대한 책임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글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브런치북 공모전을 통해 출판된 책이 100여권이 넘고 이들 중 몇 권의 책은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올해 가장 이슈가 된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가 그랬고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도 작년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책이었다.
프랑스 왕실 중심의 ‘살롱’전을 거부하고 탄생한 살롱 도튼느를 통해 등장한 야수파처럼 블로그 중심의 글쓰기 플랫폼을 거부한 카카오 브런치에서 업로드된 컨텐츠가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