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lace Collection, 애프터눈 티 그리고 친구들
한참 동안 깊이 잠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아래 층에서 밥 먹으라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결국 매니저가 직접 올라와서 나를 깨웠다. 식당에 가니 다른 게스트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고 어제 못 뵜던 사장님도 계셨다.
"얼른 와서 아침 식사 해!!"
이상하다. 사장님이 원래 나를 아는 사람인 것처럼 대하신다. 심지어 내 이름도 묻지 않으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같은 방을 쓰는 재혁이와 헷갈렸던 것이다. 사장님은 내가 재혁이라고 착각하셨다.
"미안 미안!! 혹시 너가 김정민이니?"
"네."
"아. 너가 두란이 친구구나. 두란이에게 먼저 연락받았는데, 그땐 사이트에는 예약 글이 없더라구... 그래서 나는 너가 우리집에 안오는 줄 알았지."
"아! 제가 사람들에게 여러 군데를 추천받아서 예약 전날까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두란이가 사장님께 직접 연락했다고 하길래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제 체크인 했습니다."
"우리 집 말고 어떤 곳 추천 받았는데? 런던에 있는 한인 민박 중에 우리 집 만한 곳이 없어. "
"XX 민박이요."
"XX 민박?? 내가 유일하게 아는 런던 민박집이 XX 민박이야. 예전에 어떤 한 친구가 우리 집에서 1주일 머물다가 다른 민박집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해서 나갔었거든. 그 때 체크인 한 곳이 XX 민박이야. 그런데 거기 사장이 좁은 방에 침대 꾸역꾸역 집어넣고, 음식도 엉망이고... 그래서 그 친구 도중에 뛰쳐나와서 우리 집으로 돌아왔어. XX 민박에 환불도 제대로 못 받았어. 거기 가면 안돼. 너 거기 안가길 잘했어!!"
XX 민박이 어떤지는 가보질 않아서 내가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순 없다. 하지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런던언니에서 한인 민박을 방문하는 두 가지 목적 (편안함을 누리기, 여행 정보 얻기)을 달성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사장님이 런던 정보에 바싹하셨다. 그리고 사장님의 인심이 후하셨다. 아침을 먹을 때 맛있는 반찬을 눈치 안보고 더 먹을 수 있었다.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을 민박집에서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 느낌은 바르셀로나 떼아모 하우스에서도 느꼈다. 떼아모 사장님도 민박집에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비롯해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등 유럽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다. 그래서 떼아모 하우스에 있으면서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조식도 훌륭했다.
로컬이 운영하는 호스텔과 달리 한인민박은 호스트와 게스트 관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 관계가 게스트의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좌우한다. 난 민박집 사장님과 너무 잘 지낸 덕분에 바르셀로나와 런던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쉬다가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애프터 눈 티를 마시기 위해!!
그런데 비가 제법 내린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애프터눈 티는 이런 날씨에 어울릴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런던언니 민박에서 Wallace Collection까지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하철 Oval 역 앞에서 버스 159번을 타고 Bond Street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걷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40분 정도 걸린다. 구글 맵으로 검색하면 친절하게 경로를 알려준다.
Wallace Collection은 여행자들에겐 많이 알려져있진 않지만 런던 top 3 박물관에 들어가는 이름 높은 곳이다. Wallace 가문이 개인 소장하던 예술품들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갤러리다. 전시된 작품 뿐만 아니라 건물 내부의 인테리어가 굉장히 화려했다. 구글 평점은 무려 4.6점 (5점 만점). 심지어 무료다!
전시관을 가로 질러가면 애프터눈 티를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이 나온다. 메뉴판에 적혀있는 대로 이곳에서 애프터눈 티는 오후 2시 30분 부터 4시 30분 사이에 마실 수 있다. 애프터눈 티 나오는 시간을 맞추느리 컬렉션을 모두 둘러보진 못했다.
레스토랑의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자연광이 비춘 덕분에 차를 야외에서 즐기는 듯했다. 밤에 이곳에 오면 또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거란 생각도 했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줬다. 메뉴판에 있는 차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선 차와 함께 스콘, 샌드위치, 케이크가 세트로 나오는 English Afternoon Tea를 2개 시키고 인원 수에 맞게 티를 3 종류 더 시켰다.
이 레스토랑은 스콘이 가장 맛있었다. 스콘에 발라먹는 버터와 잼도 달달했다. 샌드위치도 맛있었다. 하지만 딸기잼이 들어있는 초콜릿은 스콘에 비하면 별로였다.
차도 무난했다. 다섯 종류 각각의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맛과 향이 좋았다. 단 참나무 태운 듯한 차는 그 다섯 종류 중에선 별로였다. 나는 꾹 참고 마실만 했지만 몇몇 친구들은 냄새를 맡자마자 거부했다.
지난 1주일간 포르투갈에서 긴장감과 언어장벽 때문에 고생한 탓인지 런던에 오자마자 해방감을 느꼈다. 불과 1주일 전만 하더라도 외국 친구들 옆에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기만 했다. 하지만 런던에선 그동안 못했던 한국말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런던언니의 침대가 내 집처럼 편안했다. 저녁 때 숙소에 돌아와선 매니저가 저녁으로 만든 파스타도 뺏아먹었다. 양이 안차서 박스 안에 있는 컵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집에 돌아올 때 테스코에서 산 1.6파운드 짜리 초코머핀 4개를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피곤해서 정신없이 잤던 지난 밤이 아쉬웠기 때문에 오늘 밤은 친구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내일은 버킹엄 궁전에 가서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세 친구들은 이후에 뮤지컬 '라이온 킹 (The Lion King)'을 본다고 했다. 뮤지컬이 끝나면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 같이 가기로 했다. 나는 내셔널 갤러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와중에 귀가 솔깃해질만한 소식을 매니저가 알려줬다. 새로운 매니저가 내일 온다는 것이었다.
새로 올 매니저도 당연히 여자다.
그래서 기대된다. 기대된다!! 누가 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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