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달콤한 영화가 또 있을까??
나에겐 홀로 낯선 여행지를 다니며 우연히 멋진 여성을 만나는 판타지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유럽으로 훌쩍 떠났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매력적이고 멋진 여자들을 여럿 만났었고 가슴 설레는 순간들도 많았다.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거 '비포 선라이즈'잖아."
사실 '비포 선라이즈'가 유명한 영화라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에 도대체 비포 선라이즈가 뭐길래 이렇게 얘기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를 다운받기 시작했다.
'이거 내 얘기잖아!!'
'비포 선라이즈'를 보자마자 바로 이 생각이 들었다. 제시(에단 호크)가 비엔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셀린(줄리 델피)과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모습에서 몬세라트 가는 기차 안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제시와 셀린의 시시콜콜한 대화는 '비포 선라이즈'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만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왜 저렇게 시덥지도 않은 얘기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파리에서, 런던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돌아다녔던 것이 기억났고, 이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업로드 되지 않은 여행의 진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지에서 종종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세요?"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난 "한국에선 이러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주변 사람들과 얘기할 땐 내 체면을 생각하고 내 말에 대한 뒷감당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있지도 않았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친해져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가식없는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레코드 방에서 서로를 몰래 바라보며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장면,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전화 상황극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이토록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영화가 또 있을까? 이토록 로맨틱한 영화가 또 있을까?
이 영화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줄리 델피에 있다. 에단 호크와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넘기는 그 모습이 청순하면서도 굉장히 섹시하게 느껴졌다. 에단 호크를 바라보는 눈빛, 표정도 너무나 달콤했다.
6개월 뒤에 제시와 셀린은 다시 만났을까?
(라고 생각할 때 후속작 '비포 선셋'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여운은 사라졌고, 그들의 재회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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