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자란 아들의 입대, 부대에서 걸려온 전화

언어와 문화 차이 등 이중의 부담에도 선택한 일

by 정문

일본에서 산 지 24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어느새 큰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엊그제 나는 한국의 한 훈련소에서 퇴소식을 지켜보았다. 군복을 입은 아들은 아직 한국어 벌음이 매끄럽지 않았다. 어색한 발음으로 군가를 부르고, 조국수호강령을 외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다.


사실 재외국민, 특히 나처럼 일본에서 오래 살고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아이를 군대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군 복무는 '선택'에 가까운 문제다. 한국인이라는 국적은 유지하지만 삶의 터전은 일본에 있으니, 굳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처음부터 확고한 애국심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라는 현실적인 마음이 더 컸다. 선택지가 있을 때, 그 선택을 경험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이의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들 또한 스스로의 이유와 소신을 갖고 입대를 결정했다. 누가 시켜서도, 떠밀려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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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소식 후 짧은 식사 시간을 갖고 다시 복귀하는 아들. 엄마를 향해 충성! 하고 인사를 한다. 아직 조금은 어설픈 아들의 충성...^^



훈련소에 있는 동안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어가 서툰 탓에 괜히 혼나지는 않을까,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부모의 걱정은 늘 앞서간다. 하지만 퇴소식에서 본 아들은 생각보다 훨씬 건강했고, 표정은 단단해 보였다. 군대 가길 잘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요동쳤다. 자대 배치 결과가 나왔는데 아들은 최전방 철원으로 가게 되었다. 눈이 많이 오고, 춥고, 훈련이 혹독하다고 익히 들어온 곳이다. 훈련소를 마쳤다고 해서 걱정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아들이 자대에 도착한 그날 밤,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소대장님의 연락이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터라 보이스톡이었지만 목소리는 또렸했다. 해외에서 자라거나 이중국적을 가진 병사들이 적지 않고, 군에서도 그 특성을 이해하며 배려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부모가 어떤 마음일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그 한통의 전화는, 그날 밤 내내 떨리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 주었다.


재외국민의 병역 문제는 늘 단순한 찬반으로 소비되기 쉽다. '갈 수 있는데 왜 안 가냐' 혹은 '굳이 왜 가느냐'는 질문에는 각자의 삶의 맥락이 빠져있다. 해외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아이들에게 한국의 군대는 제도 이전에 문화이며, 언어이고, 정체성에 가깝다. 군 복무 여부는 애국심 척도가 아니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에 더 가깝다.


실제로 해외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병역을 선택할 경우 이중의 부담을 진다. 체력이나 훈련의 문제 이전에, 언어와 뉘앙스, 관계의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최근 군부대에서는 이들의 특성을 인지하고 제도적, 비공식적 배려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번에 받은 소대장님의 전화는 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군 역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라는 자리에서 체감한 순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병역을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단선적인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란다. 재외국민 자녀에게는 군대는 나라를 증명하는 무대라기보다, 스스로의 선택을 검증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다. 가지 않기로 한 선택도 존중받아야 하고, 가기로 한 선택 역시 의심받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감당하는 태도일 것이다.


며칠 뒤 아들은 말했다. "생각보다 적성에 맞아. 힘들긴 한데, 재미도 있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감당하고 있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 경험이 아들에게 무엇을 남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국경 밖에서 자란 아이가, 자신의 뿌리가 있는 나라에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살아보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애국심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아니어도, 책임과 선택, 그리고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경험으로서의 군 복무는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에서 살아온 24년 동안, 나는 늘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과 '일본에서 산다는 것' 어딘가에 서 있었다. 이제는 아들의 군복 뒤태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정체성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내리는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철원의 겨울은 춥다고 한다. 그 추위 속에서 아들은 또 하나의 시간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멀리서 지켜보는 부모로서, 조용히 응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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