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느끼는 고향의 맛

설렁탕이 먹고 싶을 땐 이곳에 갑니다

by 정문

나는 설렁탕을 좋아한다. 어쩌다 한 번씩 그 구수하고 뜨끈한 국물이 간절해지면 설렁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을 검색한다. 한국 식당이 꽤 많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설렁탕을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싼 돈을 내고 먹는데 조미료 맛이 강해서 아쉬웠던 경험이 몇 차례 있는지라 먹고 싶다고 선뜻 한국식당으로 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 설렁탕 국물 생각이 자주 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캐비어나 송로버섯처럼 고가의 고급음식도 아닌데 한 그릇 먹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가게 된 한 라멘집에서 내가 그리워하던 설렁탕 비슷한 한 그릇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카타 돈코츠 라멘 (博多豚骨ラーメン)이었다. 나는 기름지고 짠 음식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 오래 살면서도 라멘집은 잘 가지 않는다. 특히 돈코츠라 하면 진하고 기름진 육수에 간장베이스나 된장베이스로 짭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날은 날씨도 추웠고 배가 무척 고팠기 때문에 좋고 싫고 따질 것 없이 일단 줄 안 서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나의 서글픈 마음을 달래 줄 한 그릇을 만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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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라멘은 일본의 규슈 지역, 특히 후쿠오카 하카타지역에서 시작된 라멘으로 돼지뼈를 오랫동안 푹 끓여 만든 진한 돈코츠 육수가 특징이다. 국물은 깊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뽀얀 색감도 설렁탕을 떠올리게 한다. 돈코츠이지만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며, 꼬리꼬리한 돼지육수 특유의 냄새도 없다.



내가 간 라멘집은 하카타텐신(博多天神) 이라는 전국적으로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라멘집인데 기본 라멘이 600엔으로 가격까지 저렴한 곳이었다. 면발은 얇고 쫄깃한 면으로 굵은 면발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설렁탕에 사리를 넣어서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곳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카에다마(替え玉)라고 해서 처음 준 면발의 반 정도 되는 양의 면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면을 다 먹었는데 뭔가 아쉽다 싶으면 "카에다마오네가이시마스!" 하고 외치면 금방 삶은 따끈따끈한 면을 갖다 준다. 남은 국물에 넣어 먹으면 된다. 1회까지는 무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라멘집의 훌륭한 점은 이 가게만의 다대기 같은 것이 있는데 각 테이블마다 비치되어 있다. 한국사람이 먹어도 제법 매운 감칠맛 나는 이 다대기를 반 정도 먹은 후 살짝 풀어서 먹으면 맛이 확 바뀌면서 얼큰하게 먹을 수 있다. 설렁탕 국물에 깍두기를 넣어 먹듯이 말이다.


일본에서 살다 보니, 그리고 나이가 점점 들다 보니 내가 먹고 자란 우리나라 음식이 그리워지고 먹고 싶고 그렇다. 한국에 있을 땐 거들떠도 안 봤던 나물이 그렇게 그립다. 엄마의 오이지무침, 깻잎김치가 그립고 집에 널리고 널려 쳐다도 보기 싫었던 곶감과 한과들. 무슨 맛으로 먹는 거냐고 했던 절편과 백설기가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그런 음식 중 하나였던 설렁탕을 비슷하게나마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을 발견해서 정말 행복하다.

나에게 한국의 음식은 단순히 한 끼 식사, 음식을 넘어 사랑하는 엄마와 가족들의 기억, 내가 태어나 자란 땅에 대한 그리움, 정과 여러 가지 감정들 인 것 같다.

어제는 친정엄마가 알려주신 레시피로 깍두기를 담가봤는데 무 자체가 한국의 아작아작한 무와 달라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사리곰탕면과 함께 시원하게 먹을 만하게 잘 익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