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화면 아래로 '초등학생 사망'이라는 자막이 흘렀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시의 한 학교가 공습을 당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사망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내 귀에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초등학생"
나는 그 순간 세계정세가 아니라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침에 졸린 눈으로 식탁에 앉아 있던 모습, "다녀올게"하고 문을 나서던 뒷모습.
학교에 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상상은,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짓눌렀다.
--> 등교하는 딸아이의 뒷모습. 이란의 수많은 엄마들도 학교 가는 딸아이를 배웅했을 것이다. 학교 가는 뒷모습이 마지막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지금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뉴스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가 희생되는 순간, 그 사건은 더 이상 외교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어느 엄마의 일상이 무너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전쟁하지 않는 나라'라는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군사력 증강을 논의하고, 핵 보유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다카이치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발언은 일본 사회 안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평화헌법 아래에서 자라온 세대에게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전환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공기의 성질이 바뀌는 일과 같다.
말로는 '억지력'이라고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게 전략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일본에서 아이르 키운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긴장을 경험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국제 뉴스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충돌,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 흔들리는 외교 질서. 이런 단어들은 추상적이지만, 그 끈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결국 누군가의 도시, 누군가의 학교, 누군가의 아이에게 닿는다.
정치는 국가의 생존을 말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생존은 국가가 아니라 아이 한 명이다.
학교는 안전해야 한다. 등굣길은 평범해야 한다. 아이들은 세상의 불안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자임하는 나라에서조차 학교 총격과 전쟁뉴스가 반복되는 현실을 보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체제가 무엇이든, 이념이 무엇이든, 최소한 아이들의 교실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국제정치 전문가도 아니고, 군사전략을 분석할 능력도 없다. 다만 내일 아침 딸을 학교에 보내고, 오후가 되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예민하다. 그래서 더 두렵다.
일본이 어떤 길을 선택 하든, 세계정세가 어디로 흐르든, 한 가지 원칙만은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정치가 복잡해질수록, 외교가 날카로워질수록, 우리는 더 단순한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아이는 안전한가?"
그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세상.
나는 거창한 평화 담론보다 그 대답을 원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변해가는 일본 사회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