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현지 회의 매너와 문화 이해
중국 비즈니스 현장에서 회의는 단순한 업무 교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는 출장 초기에 문화적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몇 차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회의실의 침묵’에서 ‘차 한 잔의 여유’까지, 그리고 의례적인 공식인사부터 명함 교환, 자리 배치까지 모든 게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중국에서 ‘회의 매너’를 제대로 숙지하는 것은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다.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나는 늘 같은 긴장감을 느낀다. 중국 현지 파트너들과의 첫 대면,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할 때의 미묘한 공기. 처음 베이징 출장에서 겪었던 당황스러운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서구식 악수를 건네며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영어로 인사했는데, 상대방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는 내가 아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수천 년 역사가 만들어낸 고유한 질서와 예의가 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안서를 들고 와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국에서 명함 교환은 단순한 연락처 공유가 아니라 '관계(꽌시)'의 문을 여는 의식이다. 나는 수십 번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명함 예절의 세부사항들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실행한다. 가장 기본은 두 손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한 손으로 대충 건네면 예의에어 없다고 여겨진다. 명함을 받을 때는 즉시 주머니에 넣지 말고, 잠시 들여다보며 상대방의 이름과 직책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王总您好(왕 총 안녕하세요)"처럼 직책을 넣어 인사하면 더욱 정중한 인상을 준다.
명함의 순서도 중요하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가장 높은 직책의 사람부터 명함을 교환한다. 만약 상대방이 먼저 명함을 건넨다면, 그것은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한 번 광저우에서 젊은 직원이 먼저 명함을 건넸는데, 알고 보니 그가 실제 의사결정권자였던 경우가 있었다. 겉보기 나이나 복장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중국 비즈니스의 특징이다.
명함을 받은 후에는 회의 테이블 위에 정중히 놓아둔다. 특히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명함을 구겨 넣거나 펜으로 메모를 적는 행위는 금물이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명함은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고,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명함지갑에 넣는다. 이런 작은 배려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중국 회의실의 좌석 배치는 위계질서와 상호 존중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문에서 가장 먼 곳, 즉 상석(上席)에는 최고위직이 앉는다. 손님의 경우에는 주인 측의 최고위직 맞은편에 앉는 것이 예의다. 나는 처음에 이런 규칙을 몰라서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가, 현지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른 자리로 안내해 주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원형 테이블의 경우에는 더욱 복잡하다. 입구를 등지고 앉는 자리가 상석이고, 시계방향으로 서열에 따라 앉는다. 만약 여러 회사가 참석하는 회의라면, 각 회사의 최고위직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순서대로 앉는다. 이때 절대 서두르지 말고, 상대방의 안내를 받아 앉는 것이 좋다.
좌석 배치에서 특히 주의할 점은 '등을 지지 않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등 뒤가 벽이나 창문이 아닌 빈 공간인 자리를 불길하게 여긴다. 따라서 가능하면 벽을 등지고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한 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는 '감시'의 의미가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
중국 회의에서 차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보통 차를 준비해 주는데, 이때의 예절도 중요하다. 차를 따라주는 사람이 있으면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한다. 찻잔을 두 손으로 받고, 첫 모금을 마실 때는 향을 음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다.
차를 마시는 타이밍도 신경 써야 한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는 차를 마시지 않는다. 대화가 잠시 끊기거나, 자신이 말을 마친 후에 차를 마신다. 또한 찻잔이 비어 가면 주인 측에서 다시 따라주는데, 이때 찻잔을 테이블에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감사 인사를 표현할 수 있다.
나는 항저우에서 롱징차를 마시며 진행된 회의를 잊을 수 없다. 회의 중간중간 차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고, 결국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중국에서는 회의 후 따로 차를 마시며 비공식적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식 회의에서 다 다루지 못한 사안을 풀거나, 신뢰를 쌓는 중요한 시간이다. 나는 처음에 이 시간을 ‘시간 낭비’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주요 의사결정과 미래 협상의 씨앗이 싹트는 순간임을 경험했다.
중국어를 모르더라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지만, 기초적인 인사말 정도는 익혀두는 것이 좋다. "您好(니하오)", "谢谢(시에시에)", "不客气(부커치)" 정도만 알아도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 회의 시작과 끝에 중국어로 인사하면 상대방이 매우 기뻐한다.
통역을 이용할 때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먼저 통역사를 바라보며 말하지 말고, 상대방을 직접 바라보며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긴 문장보다는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통역 정확도를 높인다. 복잡한 기술적 내용이나 숫자가 많이 나오는 부분은 미리 자료를 준비해서 보여주는 것이 좋다.
비언어적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인들은 표정과 몸짓으로 많은 것을 표현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이해한다는 뜻이지 동의한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好的(하오 더)"라고 말하는 것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알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려면 상당한 경험이 필요하다.
회의 중 ‘직설하지 않음’은 은유적 표현으로 ‘네/아니요’가 명확하지 않은 답변에 익숙해야 한다. ‘생각해 보겠다’,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거절이 아닌 추가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문화적 맥락 이해가 필수적이다.
중국 회의는 서구식 회의와는 진행 방식이 다르다. 먼저 공식적인 발언 시간이 있고, 그다음에 비공식적인 토론 시간이 있다. 공식 발언 시간에는 미리 준비된 발표나 보고가 이루어지고, 참석자들은 주로 경청한다. 중간에 질문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비공식 토론 시간이 되어야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 이때도 나이나 직급 순서에 따라 발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젊은 사람이 먼저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직접적인 반대 의견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같은 우회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회의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긴급한 전화나 메시지가 있을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예의다. 또한 회의 중에 메모를 많이 적는 것도 상대방을 의심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회의 시작 시에는 일반적으로 연장자나 높은 직급자가 먼저 발언한다. 서양식처럼 즉각적인 토론보다는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는 태도가 중요하며, 중간중간 상대 의견을 부드럽게 수용하는 제스처가 협상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또한 중국어를 모르더라도 비언어적 신호, 표정, 몸짓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미묘한 기류를 놓칠 위험이 크다.
중국에서는 회의 후에 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매너도 매우 중요하다. 식당에 도착하면 주인이 좌석을 안내해 주는데, 손님은 상석에 앉는다. 상석은 보통 문을 등지고 앉는 자리다. 주인은 상석의 맞은편이나 옆자리에 앉는다.
음식이 나오면 주인이 먼저 젓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린다. 첫 번째 음식은 주인이 손님에게 먼저 권하는 것이 예의다. 손님은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조금씩 맛본다. 중국 요리는 보통 큰 접시에 나와서 개인 접시에 덜어 먹는데, 이때 공용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술을 권할 때는 거절하기 어렵지만, 건강상 이유나 종교적 이유로 마실 수 없다면 정중히 설명한다. 대신 차나 음료수로 건배에 참여할 수 있다. 건배할 때는 연장자나 높은 직급의 사람보다 잔을 낮게 들어야 한다.
식사 중에는 비즈니스 이야기보다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가족, 취미, 여행 등의 주제가 적절하다. 정치나 종교 같은 민감한 주제는 피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주인이 계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손님이 계산하려고 하면 주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선물 교환은 관계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선물의 종류와 주고받는 방식에 주의해야 한다. 너무 비싼 선물은 부담을 주고, 너무 싼 선물은 성의가 없어 보인다. 적절한 가격대는 50-200달러 정도가 무난하다.
선물의 내용도 중요하다. 한국의 전통 공예품이나 특산품이 좋다. 인삼제품, 김, 전통차, 한복 소품 등이 인기가 있다. 반면 시계, 거울, 흰색 꽃 등은 불길한 의미가 있어 피해야 한다. 선물 포장도 신경 써야 하는데, 빨간색이나 금색 포장지가 좋고, 흰색이나 검은색은 피한다.
선물을 줄 때는 두 손으로 정중히 건넨다. 받는 사람도 두 손으로 받고 감사 인사를 한다. 선물을 받은 즉시 뜯어보는 것보다는 나중에 개봉하는 것이 예의다. 만약 상대방이 선물을 준비했다면, 자신도 준비한 선물이 있어야 당황하지 않는다.
중국에서의 협상은 서구식 협상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식보다는 우회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이 효과적이다. "이것은 안 됩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이 부분은 좀 더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완곡하게 표현한다.
의사결정도 서구식처럼 회의 현장에서 즉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통 회의 후에 내부 검토를 거쳐 며칠 후에 답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즉답을 요구하거나 재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협상 과정에서 "미앤즈(面子)", 즉 체면을 중시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이 체면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미리 조율하고, 공식 회의에서는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회의가 끝난 후의 팔로우업도 중요하다. 회의 당일이나 다음 날에는 참석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보낸다. 이때 위챗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단순한 문자보다는 회의 사진이나 명함 사진을 함께 보내면 더욱 인상 깊다.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공유한다. 이때 중국어 번역본도 함께 보내면 더욱 좋다. 중요한 내용은 별도로 하이라이트 하여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다음 미팅 일정도 미리 제안한다. 너무 성급하게 재촉하지 말고, 상대방의 일정을 고려하여 여러 옵션을 제시한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
중국 비즈니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중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위계질서와 연장자 존경이 뿌리 깊다. 따라서 나이나 직급을 무시하는 행동은 큰 실례가 된다.
또한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상 개인의 의견보다는 집단의 합의를 중시한다. 회의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팀의 의견으로 포장하여 제시하는 것이 좋다. "저희 팀에서 검토한 결과..."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꽌시(关系)" 문화도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회성 만남으로는 깊은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교류와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나의 초기 출장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실수가 많았다. 한 번은 회의 중에 상대방의 의견에 즉석에서 반박했다가 분위기가 싸늘해진 적이 있었다. 나중에 현지 동료에게 들어보니, 다른 사람 앞에서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상대방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행위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또 다른 실수는 선물 관련이었다. 한국에서 좋다고 생각해서 가져간 시계를 선물로 줬는데, 상대방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에서 시계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불길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문화적 차이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회식 자리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술을 권하는 것을 계속 거절했더니 상대방이 서운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중에 설명을 통해 이해를 구했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면 더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문화를 잘 이해하고 대처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도 많았다. 상하이에서 만난 파트너와는 차 문화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통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회의 후에 차 전문점에 함께 가서 다양한 차를 맛보며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눴다.
베이징에서는 상대방의 고향이 산동성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의 산동성 출신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매우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이후 그분의 소개로 다른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만날 수 있었다.
광저우에서는 현지 축제 기간에 맞춰 출장을 계획해서 함께 축제를 구경했다. 이런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선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중국 현지 법인이나 합작회사가 있는 경우, 현지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서 좋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문화적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현지 직원들과 소통할 때는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를 강요하지 말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시에 회사의 정책과 가치는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대화와 상호 이해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현지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해야 한다. 그들은 현지 시장과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귀중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소통 채널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
중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고, 세대별로도 다르다. 따라서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속적인 학습과 경험 축적이 필요하다.
중국어 학습도 도움이 된다. 비즈니스 회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넓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배우려는 자세다. 문화적 차이를 장벽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비즈니스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의 시작은 바로 작은 예의와 배려에서 출발한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회의를 앞두고 명함을 정리하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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