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출장 중 찾아간 로컬 맛집과 일상
출장 중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지의 리듬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이자, 낯선 땅과 가까워지는 첫 번째 관문이다. 나는 출장마다 '로컬의 식탁'을 찾고, 그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채집해 왔다. 호텔 뷔페나 비즈니스 센터의 고급 레스토랑이 주는 안전함을 포기하고, 골목 깊숙한 곳의 작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메뉴판의 한자를 하나씩 해독하고, 현지인의 손짓을 따라 음식을 주문하며, 젓가락질에 서툴러 민망해하다가도 결국 그 맛에 감탄하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출장을 단순한 업무가 아닌, 삶의 확장으로 만들어준다.
베이징 첫 출장에서, 나는 3일 연속 호텔 조식과 룸서비스로 끼니를 때웠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마지막 날 아침 거울을 보며 '내가 정말 베이징에 온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날 저녁, 용기를 내어 호텔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현지인들이 북적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왕푸징 대가 뒤편의 좁은 골목에서 오래된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老北京炸酱面(라오베이징 자장면)'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들어가니 플라스틱 의자와 낡은 테이블, 그리고 현지인들로 가득한 작은 공간이었다. 메뉴판은 당연히 중국어뿐. 옆 테이블 할아버지가 드시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这个(저거)"라고 말했다.
나온 음식은 검은 장으로 비빈 면이었다. 한국의 자장면과는 완전히 달랐다. 달콤하지 않고 짭짤하며, 면도 더 쫄깃했다. 한 젓가락 맛보는 순간, '아, 이게 진짜 베이징의 맛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 순간부터 나는 로컬 맛집 탐험가가 되었다.
상하이에서는 일찍 일어나 호텔 근처를 산책하다 발견한 작은 딤섬집에서 잊을 수 없는 아침을 보냈다. 새벽 6시부터 문을 여는 그 집은 이미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대부분이 출근 전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이었다.
샤오롱바오(小笼包) 한 바구니를 주문했다. 대나무 찜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작은 만두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올리니 얇은 피 안에서 육즙이 출렁거렸다. 처음에는 먹는 방법을 몰라 당황했지만, 옆자리 아주머니가 시범을 보여주셨다. 작은 구멍을 내어 육즙을 먼저 마시고, 그다음 만두를 먹는 것이었다.
그 따뜻한 육즙이 입안에서 퍼지는 순간, 상하이라는 도시의 온기를 느꼈다. 단순한 아침식사가 아니라, 이 도시 사람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나누고 있다는 소속감이었다. 그날의 미팅도 유난히 잘 풀렸다. 아침의 좋은 기분이 하루 종일 이어졌던 것 같다.
광저우 출장에서는 현지 파트너가 추천해 준 상샤지우시(上下九市) 근처의 전통 찻집을 찾았다. 100년 넘은 역사를 가진 그 찻집은 광저우 딤섬 문화의 산실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할아버지들이 신문을 보며 차를 마시고,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딤섬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샤자오(虾饺), 슈마이(烧卖), 차슈바오(叉烧包) 등 다양한 딤섬을 주문했다. 각각의 맛과 식감이 달랐지만, 모두 정교하고 섬세했다. 특히 하가우의 투명한 피 안으로 보이는 새우의 모습은 예술품 같았다.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가 내가 외국인인 것을 보시고 친절하게 딤섬 먹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간장에 고추기름을 섞어 만든 소스, 차의 종류에 따른 딤섬 조합 등. 그분의 설명을 들으며, 딤섬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광저우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녹아든 소중한 유산임을 깨달았다.
청두 출장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경험은 역시 마라탕이었다. 현지 동료가 "청두에 왔으면 마라탕을 먹어봐야 한다"며 권해준 집은 현지에서도 유명한 맛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양한 재료 중에서 고기, 두부, 야채 등을 선택하고, 맵기 정도를 정해야 했다. 처음이라 가장 약한 단계인 '微辣(웨이라)'를 선택했지만, 그것도 내게는 상당히 매웠다. 첫 한 숟가락에 혀끝이 얼얼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먹고 싶어졌다.
마라탕의 매력은 단순히 매운맛이 아니었다. 화자오(花椒)의 마비감과 고추의 매운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감각이었다. 매우면서도 중독적인 그 맛에 점점 빠져들었다. 나중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릇을 비웠다.
그날 밤, 호텔에서 혀가 얼얼한 여운을 느끼며 생각했다. 음식도 여행처럼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전한 선택만 한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마라탕이 가르쳐 주었다.
항저우에서는 서호 주변의 전통 음식점들을 찾아다녔다. 서호초어(西湖醋鱼), 동파육(东坡肉) 등 항저우의 대표 요리들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소동파가 사랑했다는 동파육은 꼭 먹어보고 싶었다.
루외밍루이라는 오래된 음식점에서 정통 동파육을 주문했다. 간장과 황주에 푹 삶아낸 돼지고기는 젓가락으로 집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내렸다. 기름지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단맛과 짠맛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다.
서호초어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서호에서 잡은 신선한 잉어를 설탕과 식초로 조린 요리였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고, 생선 특유의 비린내도 전혀 없었다. 음식을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서호의 풍경을 감상하니, 천년 전 문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컬 맛집을 찾는 나만의 방법들이 생겼다. 첫째, 현지인들이 줄을 서는 집을 주목한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은 곳일수록 진짜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오래된 간판과 낡은 인테리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깔끔하고 모던한 곳보다 오히려 전통적인 곳에서 진정한 맛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현지인에게 직접 물어본다. 택시 기사, 호텔 직원, 상점 주인 등에게 "현지인들이 진짜 좋아하는 집"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그들의 추천은 어떤 가이드북보다 정확하다. 넷째,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찾는다. 그들이 자주 가는 집은 맛과 가격 모두 검증된 곳이다.
다섯째, 메뉴가 현지어로만 되어 있는 집을 선택한다. 영어나 한국어 메뉴가 있는 곳은 관광객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비록 주문이 어렵더라도 현지어 메뉴만 있는 곳이 더 authentic 하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련에서 들어간 해산물 식당에서는 비린내가 심한 생선을 먹고 고생한 적이 있다. 우한에서는 너무 매운 음식을 먹고 하루 종일 속이 쓰린 경험도 했다. 선양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 때문에 거의 먹지 못한 요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실패 경험들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현지인들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고, 내 입맛의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점점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안전한 선택만 한다면, 진정한 현지 문화를 경험할 수 없다. 때로는 모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과 추억은 성공한 식사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음식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다. 베이징의 자장면에서는 북방 지역의 면 문화를, 상하이의 딤섬에서는 남방의 정교한 요리 기법을, 청두의 마라탕에서는 사천 지역의 매운맛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음식을 먹는 방식이나 예절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중국에서는 원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문화가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과 나눔의 정신을 보여준다. 차를 마시는 순서나 방법, 젓가락 사용법 등도 모두 문화의 일부다.
이런 문화적 이해는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 된다. 현지 파트너와 식사를 할 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관계 형성에 유리하다. 음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소통의 좋은 매개체가 된다.
로컬 맛집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과 위생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몸을 해치면 안 된다.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지킨다. 첫째, 생것보다는 익힌 것을 선택한다. 특히 물이나 야채는 주의한다. 둘째,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을 선택한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신선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너무 기름진 음식은 피한다. 평소와 다른 음식에 위장이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넷째, 적당량만 먹는다. 새로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속이 불편할 수 있다. 다섯째, 항상 소화제나 지사제를 준비한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점에서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식에 대한 관심과 맛에 대한 감탄은 공통 언어가 된다. "好吃(하오츠, 맛있다)"라는 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다.
한 번은 난징의 작은 식당에서 옆자리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보시고 친절하게 음식 먹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서툰 중국어와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분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셨고, 나는 중국 음식의 매력에 대해 말씀드렸다.
이런 소통은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서 인간적인 교감이다. 음식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열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중국과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중국은 넓은 대륙이라 지역별로 음식 문화가 크게 다르다. 북방 지역은 면 문화가 발달했고, 남방 지역은 쌀 문화가 주류다. 내륙 지역은 매운 음식이 많고, 연안 지역은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계절에 따라서도 음식이 달라진다. 여름에는 시원한 냉면이나 시원한 요리가 인기고, 겨울에는 뜨거운 훠궈나 따뜻한 국물 요리를 즐긴다. 봄에는 새순을 이용한 요리가, 가을에는 게나 과일을 이용한 요리가 제철이다.
이런 계절성과 지역성을 이해하고 그때그때 제철 음식을 찾아먹는 것도 로컬 맛집 탐험의 재미다. 현지인들처럼 계절에 맞는 음식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 리듬에 동화된다.
중국의 야시장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베이징의 왕푸징 야시장, 상하이의 청황 야시장, 청두의 진리 야시장 등은 각각 독특한 특색이 있다. 야시장에서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전갈 꼬치, 불가사리 구이 같은 독특한 음식부터 탕후루(糖葫芦), 지엔빙(煎饼) 같은 전통 간식까지 다양하다. 처음에는 낯설고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면 새로운 맛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야시장의 매력은 음식뿐만 아니라 그 분위기에도 있다. 활기찬 상인들의 호객 소리, 다양한 냄새가 뒤섞인 공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 모든 것이 생동감 넘치고 에너지가 있다.
로컬 맛집에서 먹은 음식들은 사진으로 기록해 둔다. 나중에 그 사진들을 보면 그때의 맛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또한 같은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동료들에게 정보를 공유할 때도 유용하다.
사진과 함께 간단한 메모도 남긴다. 음식의 이름, 맛의 특징, 식당의 위치와 분위기 등을 기록한다. 가격 정보도 함께 적어두면 예산 계획에 도움이 된다.
이런 기록들이 쌓이면서 나만의 중국 맛집 지도가 완성된다. 지역별, 음식 종류별로 정리해 두면 나중에 출장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다.
현지 파트너와의 식사도 로컬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다. 그들이 선택한 음식점에서 그들의 취향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비즈니스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
파트너와 식사할 때는 그들의 추천을 따르는 것이 좋다. 내가 선택한 음식이 그들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식사 예절도 그들의 방식을 따라 한다. 젓가락 사용법, 음주 예절, 대화 방식 등을 관찰하고 배운다.
이런 식사 자리에서는 비즈니스 이야기보다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음식, 문화, 가족, 취미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로컬 맛집 탐험을 통해 얻은 것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 경험만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 현지인들과의 소통,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용기까지 모든 것이 소중한 선물이었다.
음식은 가장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문화 체험이다. 책이나 영상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맛, 향, 질감, 온도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는다.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맛들이 그리워진다. 때로는 서울의 중국 음식점을 찾아가지만, 현지에서 느꼈던 그 감동을 똑같이 재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음 출장이 더욱 기대된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출장을 계획하며, 그 도시의 맛집 정보를 미리 조사한다. 어떤 새로운 맛을 만날지, 어떤 사람들과 소통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음식이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세계와 만날 준비를 한다.
로컬 맛집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서 삶의 확장이다.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 낯선 문화에 대한 이해, 현지인들과의 소통. 이 모든 것이 나를 더 풍부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더 나은 비즈니스맨이 되어간다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