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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an 16. 2023

감사일기 1

2022년 11월

땡스클럽에서 쓴 감사일기 모음


2022.11.04.

- 마공에게 편안한 공간으로 초대받아 겁내지 않고 외출했다. 그와 대화하는 시간은 물론 정적의 시간도 즐거웠다. 마공의 집은 빛 드는 구석도 그림자 지는 벽도 평온했다.

- 매번 사진으로만 만났던 비인간동물 친구 몽이와 반갑게 인사했다. 사진 속 몽이는 차분해 보였는데 실제로는 활달하고 뽈뽈거렸다. 그와 눈 마주치고 쓰다듬고 뒹굴거리며 가까워졌다. 매 순간이 소중하여 감사했다.

- 택배기사님이 층층마다 배달하시느라 엘리베이터가 계속 멈춰 섰다. 다른 분들도 여럿 함께 계셨는데 모두 하나같이 열림 버튼을 눌러 기다려주셨다. 기사님께서 사과하실 때 사람들이 괜찮다고 답하는 장면을 목격해서 기쁘다.

- 귀가 후 빈 그릇들이 널린 식탁을 보고 행복했다. 매번 과한 다이어트 고민으로 식욕을 참아내는 아마께서 오랜만에 드시고 싶다고 말한 음식이었다. 퇴근 후 스트레스 없이 먹고 싶은 걸 드신 아마의 표정이 만족스러워 보여서 아름다웠다. 와중에 채식 메뉴를 찾아주신 아마의 선택에 감사하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아마의 흔적을 설거지를 하는 게 즐거워서 감사하다.




2022.11.05.

- 내가 가장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인정받아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멋진 동료 덕분에 자신감이 생긴다.

- 존경하는 친구 선의 양육자인 서리와 친구가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이젠 확실히 나를 자녀의 친구가 아닌 본인의 친구로서 대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매우 즐겁다.

- 누군가의 생존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안도감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의 오래된 트라우마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가 그것을 한걸음 극복해 내는 순간에 함께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친구를 응원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섣불리 미숙한 위로를 내뱉지 않고, 그저 친구의 손을 잡아 연결감을 느낀 우리의 관계가 자랑스러웠다.

- 그냥 꿈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을 ‘오늘’을 정리하고 지나친 순간에서 감사함을 찾아낼 핑계이자 커뮤니티가 생겨서 행복하다. 감사일기가 감사하다.




2022.11.06.

- 입맛 없던 내게 생강차와 감을 깎아 가져다준 연에게 감사하다.

- 아주 맛난 가을의 단감에게 감사하다.




2022.11.07.

- 나를 편안하게 만든 음악과 향과 조명에게 감사하다.

- 잊고 있던 인연에게 안부 연락을 받았다. 그가 무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도 안전한 상황에서 답을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사실 가깝지 않다고 생각해 온 사람들이었는데, 주변을 챙길 줄 아는 그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2022.11.13.

- 코로나 확진이다. 농담으로 유급휴가가 가능한 시기에 걸리고 싶다고 했는데, 퇴사하자마자 확진되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여유가 통증을 완화시킨다.

- 동거가족 중 심한 호흡기질환자가 있어 정말 많이 걱정했다. 격리기간 절반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그에게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안심이다. 이후에도 부디 전염병으로부터 무탈하셨으면 좋겠다.

- PCR검사 앞뒤 이틀 동안은 매우 아팠다. 하필 이때 돌봄 공백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 주고 연락 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 집 근처에 대학병원과 원스톱 진료기관들이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 24시간 대기 중인 의료진들께 감사하다. 좋은 인프라가 마련된 지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곳을 생각한다.

- 먹어야 하는 약은 많은데 식사는 계속 거르게 되어 탈이 났다. 오늘 격리 중 처음으로 동거가족에게 죽을 부탁 했는데 매우 기뻐하셨다. 나의 회복에 행복해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 감사하다.




2022.11.14.

- 지난밤 내내 식은땀이 흘러 비몽사몽 기후정의행진 스태프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기능성으로 만들어진 단체티 덕분에 쾌적한 잠자리가 되었다.

- 마공이 혼자 격리 중인 나를 찾아와 줬다. 평일인데도 시간을 내주어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 왔다. 방에서 격리하느라 직접 맞이하지도 못했는데, 알아서 음식도 세팅해 넣어주고 잠들어버린 내게 따뜻한 작별쪽지도 남기고 갔다. 그의 돌봄에 감사하다.

- 다른 분들의 감사일기를 읽다 보면 그날 맡지 못한 바람 내음이 느껴진다. 읽는 것만큼이나 리액션 이모티콘을 고르는 것도 재미있다. 이 느슨한 공동체가 즐겁다.




2022.11.15.

처음으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즐거움과 재정적인 안정은 정말 같이 얻을 수 없는 걸까 답 없는 고민에 빠졌다. 생각하는 중에 우연히 네팔어로 코끼리가 ‘하티’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신나 하는 나를 발견하고 고민의 방향이 조금 단순해졌다.




2022.11.16.

- 빈이 공연 할인권을 보내주어 오랜만에 새로운 형식의 극을 보러 가게 되었다. 끊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소개하고 초대해 주어 감사하다.

- 오랜만에 아마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했다. 신나서 교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 우연히 방문한 카페에 비건 옵션이 있었다. 반갑고 감사하다.




2022.11.17.

- 사랑하는 친구 도도를 만났다. 그가 마음 편히 나올 수 있게 대신 반려동물을 돌봐주신 도도 어머니께 감사하다. 그가 나의 건강 상태와 기분을 위해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장에 데려가주었다. 작품을 보는 내내 멋진 대화를 나누고 영감을 얻었다.

- 오랜만에 카카오톡에 들어가니 가을 하늘, 낙엽, 코끼리 그림, 창문의 빗방울 사진으로 대신한 안부연락이 쪼르륵 연달아 와 있었다. 계절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하나씩 확인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 전철에서 한 어린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가 곰돌이 젤리 한 알을 받았다. 감사함을 충분하게 표현해 준 그에게 감사하다.




2022.11.18.

- 혼자로는 엄두도 못 내는 먼 곳에 마공과 함께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우 멋진 책방에 데려가준 덕분에, 목적이 이곳이 아니었음에도 외출이 정말 행복해졌다. 함께 책, 안내문, 차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 마공이 나에게 책 읽을 시간을 양보해 줘서 감사했다. 덕분에 ‘와비 사비’라는 근사한 언어를 얻었다.

- 오랜만에 연출이 재미있는 연극을 봤다. ‘장 주네’에 대해 미리 알고 관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극단에 피드백을 말해줄 수 있어서 기뻤다.

- 글빈이 마음에 쏙 드는 술집에 데려가줬다. 유쾌한 사장님과 차분한 반려묘, 포카라에서 갔던 바와 비슷한 인테리어까지, 다음에 또 찾아가고 싶다.

- 글빈, 윤, 마공과의 대화가 생각보다 더 즐거워서 전철 막차 시간을 놓쳤다. 마공이 야무지게 버스를 찾아준 덕분에 안전하게 함께 귀가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2022.11.19.

- 성이 보내준 소설책 선물이 도착했다. 아직 다 못 읽은 책들을 뒤로하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문학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도 꽤나 재밌게 읽고 있다. 기분이 좋다.

- 정혈통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부아께서 새벽에 약과 간식, 핫팩을 사다 주신 덕분에 몸이 편해졌다. 감사하다.




2022.11.20.

처음 갖는 기약 없는 백수 생활이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동거가족이 먼저 알아차려주고 위로해 주었다. 아직도 내가 너무 어리숙하고 모난 것 같아 속상했는데 평정심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있다. 어느 정도의 독립적 공간과 시간을 보장받는 집에서 사랑받고 있음에 다시금 감사하고 다행이다.




2022.11.21.

- 오늘 병원을 못 가게 되어 전화했는데 데스크 선생님께서 엄청 걱정해 주셨다. 약을 끊기지 않고 먹을 수 있게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제 곧 퇴직하시는데 그전에 직접 감사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

- 친구 추천으로 스튜디오 매간당의 라스트카니발 국악 커버 영상을 보게 되었다. 햇빛 받으며 좋아하는 곡을 듣고 있으니 감사했다.




2022.11.22.

- 느슨한 루틴을 깨고 긴 온라인 회의에 참여했다. 끝까지 집중해 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 회복기간에 정기적 활동을 전부 취소하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피아노 레슨이었다. 서운함이 티가 났는지 부아께서 전자피아노를 사주셨다. 다정한 가족에게 감사하다.




2022.11.23.

- 집 근처에 아름다운 가게가 생긴 덕분에 쓰지 않는 물품 기부도 하고 아주 저렴하게 겨울옷도 구했다. 실용성 있는 겨울 옷을 6벌이나 샀는데 3만 원이 조금 넘었다. 순환의 삶 행복하다.

- 음악을 몸으로 표현해 내는 댄서들이 멋지다. 여러 영감을 얻었다.




2022.11.24.

- 사랑하는 아마의 생신을 축하드릴 수 있어 기쁘다. 귀여운 펭수 스티커와 작은 비건 조각케이크로 우리만의 잔치를 즐겼다.

- 꿈꾸던 코워킹스페이스에 다녀왔다. 예전에 손님으로 갔을 때보다 더 활기차서 내가 다 행복했다. 잡인터뷰 때문이었는데 회사 측에서 잘 봐주셔서 감사했다. 내일 오전에 거절 연락을 드려야 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친구들이 딱 필요한 조언을 해준 덕분에 안심했다.

- 서울숲에서 책을 읽었다. 혁이 예전에 편지 대신 건네준 책이었는데 술술 다 읽어 내릴 만큼 흥미로웠다. 그의 선물을 알맞은 순간에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 서울숲에서의 산책은 평화로웠다. 임의재생으로 나온 음악도 좋았고 날씨까지 맑아서 올해 처음으로 제대로 가을을 만끽했다.




2022.11.25.

- 어제 인터뷰한 곳에 거절 연락을 드렸다. 대본까지 미리 적어놓을 만큼 긴장했는데 오히려 근사한 덕담을 해주셨다.

- 부아가 조퇴하고 오셔서 같이 피아노를 설치했다. 다 해놓고 보니 불량품이었다. 며칠 전부터 설렜던 터라 갑자기 생긴 교환기간이 너무 속상하다. 투덜거리는 내게 흥미로운 악보를 보내주며 위로해 준 석을 존경한다.

- 단단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방해금지 모드가 풀려있어 제때 연락이 닿았다. 그는 회사 일로 매우 힘들어하는 상태였다. 늘 주변에 알리지 않고 혼자 앓던 단단인데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에 감격했다. 나를 필요로 할 때 그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 순례길을 걷고 있는 늘이 그 지역 책방에서 발견한 듯한 장자크 상페 책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그의 안부와 최애 작가의 흔적이 반가웠다.




2022.11.26.

- 알람 없는 주말임에도 아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에 눈이 떠졌다.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어서 기쁘다.

- 여행자를 꿈꾸는 부아께 첫 분짜와 쌀국수 경험을 선물(?)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둘이서 네컷사진을 찍었다. 부녀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잘 담겨서 매우 매우 행복하다. 휴일을 내어준 부아께 감사하다.

- 희음께서 나에게 ‘속도를 충분히 느리게 만들어 아픈 곳을 더 들여다보길 바란다’는 위로를 건네주셨다. 요즘 이것만큼 필요했던 말은 없었다. 감사하다.

- 유화 물감과 붓을 조금 사 왔다. 저녁시간에 좋아하는 가수 안젤로 드 어거스틴 새 앨범을 들으며 나무에 그림을 그렸다. 계획 없이 붓을 들었는데 나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냈다. 미술 창작은 잘 도전하지 않는데 편안하게 해내서 다행이다. 생각을 비우고 색을 채웠다. 꽤나 즐거웠다.




2022.11.28.

- 낮에 후임자께 급하게 전화가 왔다. 나의 퇴사 직전 터진 이슈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일로 속상하셨을 후임자께 죄송스러웠다. 그럼에도 우리의 통화로 어느 정도의 방향과 답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그의 전화를 침착하게 제시간에 받고, 그를 응원할 수 있어서 또 다행이었다.

- 윤 언니를 만났다. 매년 이렇게 한 번씩이라도 만나는 우리의 연이 감사하다. 항상 내게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가 참 좋다.

- 아침에 비가 온다고 문자 남겨준 월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외출할 때 놀라지 않았다.

- 나의 활동에 늘 과분한 칭찬을 남겨주는 선에게 감사하다. 마치 내가 엄청 근사한 예술가가 된 기분이다.

- 아이리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오늘의 체력에 감사하다.




2022.11.29.

- 그리운 사람이 꿈에 나왔다. 반갑고 감사하다.

- 나의 창작물을 좋아해 주시는 어떤 분께 아주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편지를 받았다. 자신감이 생긴다.




2022.11.30.

-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작업실 정리를 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 마음의 짐 같은 공간인데 깔끔해진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작업실을 찾은 김에 근처 우체국에 들리려고 했는데 편지를 놓고 온 바람에 다시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화물연대 기자회견을 마주쳤다. 발언대 앞으로 가서 지지와 연대의 눈빛을 잔뜩 보냈다. 동선이 꼬여 이들과 마주친 것에 매우 감사하다.

- 욕실에 채워지는 아로마티카 물품들에 감사하다.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소비습관 변화가 감사하다.

- 시간이 맞아 정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집밥 같은 식탁을 대접받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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