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야 Jan 25. 2023

<그네 타는 기분>

4년만의 이별을 맞은 그를 위해

 5살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내 자신이 근사하다고 생각한 순간은. 누군가 밀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네를 움직이고 멈출 수 있게 될 때 나는 내가 너무나 기특했다. 더 높이 더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타이밍 맞추어 발을 굴러서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내 삶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배운 단어가 얼마 없던 그 시절의 나는 자유보다는 깊고 기쁨보다는 복잡한 이 감정을 ‘그네 타는 기분’이라고 불렀다.


 세상은 전부 들떠있었다. 나무에 색색의 조명이 감겨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어린이들은 얼굴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선행을 과시했다. 나는 오래된 연인과 벤치에 앉아 한껏 뜨거워진 겨울 풍경을 구경했다. 분명 우리에게도 트리 장식만으로도 가슴 떨리던 시간이 있었다. 들썩이는 거리에 맞춰 분주히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계획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상대를 위한 말을 고르느라 수많은 정적을 맞이했다. 우리는 작년에 먹었던 그 케이크를 산 후 재작년에 머물렀던 그의 집으로 가서 첫 기념일에 나눈 그 키스를 할 것이다. 반복되는 만남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매일 새로울 수 없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였다. 그저 우리의 대화에 ‘다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따가웠다. 가슴이 아닌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나 지쳤어.”

길었던 고민의 시간이 무색할만큼 나의 고백은 재채기 같았다. 참을 새 없이 툭 튀어나왔다.

  “계속 따갑기만 해."

그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오늘 중에 아니, 이번 겨울 중에 가장 긴 눈맞춤이었다. 그가 놀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재채기를 참아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말을 더 얹지 않았고 묵묵히 그의 재채기를 기다렸다.

 

  “4년이야.”

  “응.”

그는 설득을 택했다. 우리가 쌓아온 시간과 사랑을 되짚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상쾌한 나뭇잎 향. 이 계절이 시작될 무렵 그에게 선물한 핸드크림이다. 그 사람다웠다. 크게 다투더라도 단 한순간도 나와의 관계를 놓지 않았다. 그의 몸이 가까워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더 노력할게.”

더 이상 무엇을? 사실 그는 노력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저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고, 나의 노력은 상대의 대가를 바라는 정당한 이유가 되어 왔을 뿐이다. 그가 내 마음을 돌리려 할수록 우리의 관계는 더 명확해졌다.


 정적 사이로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제야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 그네 타는 거 좋아해.”

  “뭐?”

  “우리 오래 만났는데, 몰랐지.”

  “무슨 소리야?”

우리는 몇 번이나 발 구를 타이밍을 놓쳤어. 그럼에도 애정을 바람으로 만들어 간신히 그네를 움직여온 거야. 그 바람도, 우리의 그네도 멎었는데 둘 다 그걸 외면했어. 마음에 길고 애절한 작별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보다 더 오래 재채기를 참을 그에게 가장 필요할 마지막 인사를 골랐다.

  “잘 지내.”

결국 우리 사이는 또 작은 진심을 감추며 끝이 난다. 벤치에 그를 남겨두고 길을 건넜다. 그는 간절하게 내 이름을 몇 번 불렀지만 다가와 붙잡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 사람다웠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알록달록한 놀이터 풍경으로 녹아들었다. 자란 만큼 좁아진 그네에 엉덩이를 욱여넣었다. 그리고 불쾌한 쇠냄새를 풍기는 줄을 꽉 잡았다. 성큼성큼 뒷걸음치다 있는 힘껏 몸을 앞으로 밀었다. 온몸으로 시린 겨울이 느껴졌다. 따스함 하나 느껴지지 않는 날쌘 바람이 눈물자국을 훑었다. 해방감. 그래, 그네 위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축축하게 짓이겨진 고엽의 냄새를 맡으며 이번 겨울 처음으로 이 계절다운 바람을 맞았다.




본 저작물은 뉴리프를 통해 작성하였으며, 해당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감사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