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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May 28. 2022

<부재중 전화>

준을 추모하며

욕설을 그대로 옮겨놓은 문장들이 있습니다.




부재중 전화 4통


 나의 아이폰은 항상 전화를 거절한다. 틈만 나면 달을 띄우는 (아이폰은 방해금지 모드를 설정하면 화면 상단에 달 아이콘이 생긴다.) 주인 탓이다.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서 생긴 습관이었다. 부재중 알림을 확인하면 수신자에게 짧은 문자를 남긴다.   


    ?  


이미 익숙해진 친구들은 이 싸가지도 맥락도 없는 문자에 답장으로 전화를 건 목적을 설명한다.

    그냥 생각나서ㅋㅋㅋ 


      물어볼  있었는데 해결 


1시간  내게 전화를  통이나 시도한 준은 특히나 연락이 잦은 친구였다. 준의 이름이 뜨면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의 전화최대한 피하는 편이었는데,   받으면 1시간은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통화 내내 욕설을 듣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시발년이라서 어쩌고."
   "존나 쓰레기니까 저쩌고."

문장마다 스며든 비속어는 둘째 치고, 가장 불편했던 것은 준이 거칠게 비난하는 대상이 본인이라는 점이다. 남을 욕하는 상황이라면 친구로서 한마디라도 거들겠는데, 본인을 욕하다 보니 내가   있는 리액션이 딱히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열심히 설득했더랬다. 자기 계발서를 읊다시피 잔뜩 꾸민 말만 늘어놓는 내게 준은 말했다.

  “내가 병신같이 제대로 설명을 못해서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아주 신박한 논리로  배로 불어난 자기 탓이 시작되었다. 설득은 당연히 실패였다. 다음에는 “그건 너가  잘못했네하고 한술  떠보았다.

  "니가 봐도 그러면 내가 진짜 개년이네."

자기혐오는 거듭제곱으로 불어났다. 결국 나는 클래식한 선택지를 찾았다.
  -.
  -아이고.
  -속상했겠다.
상대방의 자기 비하는 교묘히 피하고 감정에만 공감할  있는 리액션 3대장이다.     


 준의 부재중 알림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콜백을  것인가,  것인가.  통이나  정도면 분명 상황 설명하는데만 2시간이 소요될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준은 오늘 내가 공강날임을 알고 있다. 알림을 확인한 시간은 오후 2.  먹겠다고 중간에 통화를 끊어내기에 아주 애매한 시간이다. 다시 말해  통화를 하기  좋은 시간대다. 그렇다고 지금 무시하면 언젠가 3시간 통화로 늘어날 것이다. 다리를 덜덜 떨며 머리를 굴렸다. 당장 준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깔끔하게 전화를 마무리할 방법.


 당장 모자를 눌러쓰고 단골 카페로 향했다. 사장님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평소 같으면 스피커 바로 앞이라 절대 앉지 않을 자리였다. 사장님을 붙잡고 시시껄렁한 대화를 시작했다. 테이블 아래로는 준에게 문자를 남겼다.


    으아 이제 봤당ㅠㅠ


사장님의 농담에 까르르 웃으며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폰을 올려놓았다.  진동이 울렸다. 사장님이 자리를 피해 주시기 전에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 죄송해요. 잠시만요. 여보세요?

 문장을 단숨에 내뱉었다.  기술은  가지 효과가 있다. 크게 들리는 음악소리로 내가 외출 중이라는  눈치채게 하면서 연결되자마자 새어나갔을 사과 인사로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는 것도 알릴  있다.

  “밖인가 보네?”

성공이다.


  -웅. 미안. 나 통화 짧게 해야겠다.     


카페 음악 박자에 맞춰 준의 말이 우다다다 빨라졌다.      


  “우다다다다. 시발.

  -응.

  “우다다 다다다. 지랄.

  -아이고

  “우다다다다. 좆같아.”

  -속상했겠다.     


 나는 잘 코딩된 인공지능처럼 리액션을 출력해냈다. 그리고 주섬주섬 이어폰을 연결해 스도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와 게임, 세상이 좋아져 하나의 기계가 동시에 두 가지 작업을 해낸다. 하지만 인간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지 못했다. 8이 들어갈 올바른 칸을 찾느라 준의 말은 흘려 들었다. 맥락은 물론 대답 타이밍도 몇 번이나 놓쳤다. 그저 내가 편한 대로 답했고, 그래도 통화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난이도 높은 스도쿠 두 판을 끝냈다.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준아, 미안한데 나 끊어야 된다.

  “엉엉”

  -응. 사랑해~


준과의 통화는 꼭 “사랑해”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성의 없는 리액션 3대장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맺음말이었다. 나는 사랑이 헤퍼서, 긴 대화가 귀찮아서 카페까지 찾아왔음에도 다정하게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방금 통화하고도 준의 이야기가 벌써 어렴풋해졌다. 준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 이야기는 내가 아닌 준의 마음의 문제였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 중간고사에 워크숍에 해외교류 준비까지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아주 조금 어스름해진 초가을 저녁이었다. 해외에서 공연할 소고춤을 연습하느라 오랜만에 땀을 잔뜩 흘렸다. 몸을 움직이니 기분이 상기되어 있었다.      


부재중 전화 1통

   

쉬는 시간에 폰을 확인하니 준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한 번에 세 통 이상씩 부재중을 남기던 준 치고는 아주 담백한 숫자였다. 이번에는 콜백에 대한 고민이 짧았다. 상황이 아주 좋았다. 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풍물 연습 소리가 누가 봐도 전화를 길게 하지 못할 만한 적절한 배경음이었다. 바로 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Damien Rice의 9 crimes. 처음 듣는 준의 컬러링이다. 감미로운 밥 아저씨를 따라 흥얼거리려는데 준이 전화를 받았다.
     

  “해외교류 준비 ?”

  -응응. 근데 곧 쉬는 시간 끝나.


밑밥 잘 깔았고, 여기 코딱지만 한 학생회관 복도는 모든 소음이 다 울려 퍼진다. 짧게 통화하기 딱 좋다.    
  

  “너 뭐하고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함.”


엥? 문장에 욕설이 없다. 심지어 내가 먼저 무언가 말해야 한다. ‘응, 아이고, 속상했겠다’만 잔뜩 준비한 터라 당황스러웠다.


  -바빴지, 뭐.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그냥. 목소리 들은  오래된  같아서.”     


발언권이  넘어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 줄줄이 가벼운 근황을 얘기했다. 준은 마땅한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내가 말을 멈추는 순간 침묵이 흐르는 대화라니. 익숙하지 않은 책임감에 몸이 꼬였다.


 “어제 좀 힘들어서 혼자 맥주를 마셨는데,”      


준이 드디어 말하기 시작했다! 안심이다. 오늘 그냥 초입이 길었던 거구나. 다시 리액션 출력.     


 -아이고, 그랬구나.

 “새로 나왔다는 제주 무슨 맥주를 마셨는데 괜찮더라.”

 -응.

 “그거 먹어봤어?”     


자꾸 대화의 주체가 내게로 넘어왔다. 목적이 불분명한 안부만 오고 갔다. 입력되지 않은  상황에 불쑥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있으면 그냥 빨리할 것이지. 결국 가장 편리한 말을 내뱉었다.
      

  -준아! 미안한데 끊어야겠다!

  “응”

  -미안 미안. 사랑해~


 다음날 준에게 부재중 전화가 2 와있었다. 그날도 학생회관 복도는 통화하기엔 너무 시끄러웠고 저녁을 먹으러 가겠다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예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사이 나는 소고춤 에이스로 등극하여 연습을 빠질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준이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면 맞춰줄 자신이 없었다.
 

    겨울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입어야 하는 옷이  겹씩 늘어날 때마다  바빠졌다. 여전히  아이폰에는 달이  있었었고,  마음에도 캄캄한 겨울밤이 이어졌다. 불규칙해진 일상에 우울증이  심해진 것이다. 준은  이후로도 두세 번의 부재중을 남겼지만  어떤 전화도 콜백 하지 않았다.

 이른 종강을 앞둔  강의의 쉬는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폰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친구 다섯 명에게 10건이 넘는 부재중 알림이 남겨져 있었다. 준의 전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3 동안 쌓인 지저분한 알림들을 보자 먼저 불쾌감이 밀려왔다. '지들끼리 놀지,  전화질이야.' 나쁜 말만 골라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알림을  지워버리고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짧은 진동이 여러  울렸다. 하루 동안 밀려있던 카톡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메시지 속에는 준의 이름이 보였다. , , .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충 메시지를 확인했다. 휘리릭 넘기는데 눈에 띄는 텍스트가 있었다.
     

<부고> 금일 새벽 준 님께서 ... 00 장례식장 ...



허겁지겁 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9 crimes의 후렴구를 듣고 또 들어도 노래가 끊기질 않았다. 뒤늦게 준이 보낸 문자도 확인했다. 길고 명확한 유서였다. 세 번째 문단에는 내 이름도 있었다.
    

    ... 사랑한다는 말로 나를 더 버티게 해 줘서 고마워. ...



 부천의  장례식장 지하였다. 기분 나쁜 습기에 음식과  냄새가 한데 섞여 점점 짙어졌다. 마중 나온 친구들이 근조 화환 하나 없이 가장 고요한, 가장 초라한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상에 꽃을 올리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고꾸라지듯이 절을   했다. 믿기질 않았다. 고개를 들어 나무액자에 갇힌 준을 바라보았다. 빨간 머리의 준은 웃는 건지 인상을 찌푸린 건지 분간할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진 찍기 전에 뿌리 염색  하지. 절을   했다. 화가 났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욕하고도 뭐가  모자라서 스스로 죽어? 일어나며 준을 노려봤다. 눈물을  참으며 반절을 했다. 너는 내가 얼마나 헤픈지 알면서  사랑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면 어떡해.


절만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친구들과 준에 대한 추억팔이하는 시간도 없었다. 발인식에도 가지 않았다. 무시한 전화들이 준의 죽음을 앞당겼다는 죄책감에 잠식되었다.


 몇 년간 나는 나의 안식을 위해 준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갑자기 준이 떠오르는 순간에는 그립기보다 덜컥 겁이 났다. 부재중 알림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 가사처럼, 나는 마음이 작지만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리에서 항상 곁에 있기 위해 처음으로 준에 대한 기억을 끌어왔다. 후회하더라도 이미 늦은 위로만 될 뿐이고, 다짐하더라도 의미 없는 약속이 될 뿐이다. 결국 준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의 문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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