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봄밤>을 읽고
이 시가 계속 아른거린다. 이유는 역시 봄 때문이다. 스멀스멀 찾아오는 봄이 요즘 제일의 관심사다. 특히 봄밤은 별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서는 유일한 핑계다. 선선하고 어둑한 봄의 밤은 날 괜히 솔직하고 설레게 한다. 나는 그때 느끼는 감정을 평화라고 부른다.
봄은 떠나가는 그 순간부터 그립다. 손부채질을 하면서, 슥삭거리는 낙엽 길을 걸으면서, 포근한 목도리 속에 파묻히면서도 항상 봄이 그립다. 이 그리움은 오래되면 될수록 초조함으로 바뀐다. 언제쯤 오는지 자꾸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아직도 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하게 된다. 김수영 작가는 ‘너’에게 서둘지 말라고 말했다.
이 시를 한 번 읽었을 땐 ‘너’가 봄이었다. 여러 번 읽자 ‘너’는 봄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읽힌다. 우리는 대부분 참담한 현실을 벗어날 때 ‘봄이 찾아왔다’고 표현한다. 내 꿈이 달의 행로처럼 아침과 어긋나고 떠나는 기적 소리가 슬플 때, 나는 봄을 바란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봄만 애타게 부른다. 그렇게 조급히 맞이할 봄은 내가 원하던 봄과 다를 게 분명하다. 나는 지금껏 나도 모르게 봄을 봄이 아니라 ‘추운 겨울의 탈출’로 기다렸다. 아마 작가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시는 봄을 재촉하던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시인과 청춘에게 절제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참 기다린 봄이 기척을 내는 지금은 더 힘들다. 절제 없는 그리움은 절대 반가움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작가는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서둘지 말고 봄을 봄으로 기다릴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이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는 땅 밖으로 꺼내진데도 깜깜하다. 스스로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도 마찬가지다. 봄이 찾아온다고 해서 나의 모든 순간이 따스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봄을 귀여운 영감으로 받아들일 준비로 그리움을 채우다 보면, 봄을 봄으로써 맞이할 수 있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