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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May 25. 2022

가이스와이와깟 베사오

필리핀으로 두 번째 해외봉사를 다녀오다


 네팔에서 돌아온 ,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던 나는 내일을 너무나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나의 경험은 너무나 개인적이지만  사람을 살릴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처음 도착한 마닐라는 어지러웠다. 새벽 비행기에 비몽사몽 잠까지 덜 깬 상태라 실감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저기서 LG가 “WELCOME TO MANILA!”를 광고해서 기분이 정말 요상했다. 나도 모르게 하늘에서 마을로 곧바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필리핀의 도시가 어색했다. 당황스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더 신경 써서 걸음을 깊이 했다.


 필리핀 프로젝트는 베사오Besao 지역에서 진행된다. 베사오는 필리핀 루손 북부인 마운틴프로빈스Mt.Province에 위치해 있다. 수도인 마닐라에서 현지 버스를 갈아타며 11시간을 달려가야지만 만나게 되는 이 마을은 해발고도 1800~2000m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필리핀의 덥고 습한 날씨와는 다르게, 시원한 바람과 손에 닿을 듯한 운해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베사오는 필리핀 중에서도 마을공동체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는 지역이다. 베사오 주민은 대부분 이그룻 족으로, 필리핀 산악지역 소수민족이다.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간혹 소수민족 언어만 쓰는 어르신들도 계시다. 인사만큼은 꼭 그들의 언어로 했는데 그중 낮에 쓰이는 '가이스아이와깟'을 많이 썼다. 베사오에는 총 13개의 바랑가이마을단위가 있다. 각 바랑가이에는 50~300명의 주민들이 거주한다. 루트온협동조합은 가장 큰 바랑가이인 킨이웨이Kiniway에서 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팀원들은 킨이웨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랑가이로 흩어진다. 킨이웨이중학교 학생들이 호스트가 되어 1:1로 짝 지어 홈스테이를 한다.


 나는 킨이웨이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락마안Lacmaan마을의 조안 집에서 지냈다. 2층 나무집이었는데 마당이 산이랑 이어져있어 딱히 울타리가 필요 없는 아주 예쁜 곳이었다. 조안은 아들인 바께오, 어머니인 글로리, 조카인 노벨린내 호스트였지만 가장 대화 나눈 시간이 적었다, 가사를 도와주는 글레어가 함께 살았다. 이제 막 1살이 된 바께오가 있다 보니 우리 집의 분위기는 항상 활기차고 밝은 편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아기를 보러 자주 찾아왔다.

 
 우리 집은 언제나 식전 기도를 했다. 매번 정성스럽게 오-래 했다. 노래로 대신하는 날도 있었다. 성당에서 일하는 조안의 영향으로 우리끼리의 기도임에도 식순과 이벤트들이 있었다. 첫 저녁기도에서는 글로리가 "다예를 가족으로 맞게 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주셨다. 특히나 바께오의 생일날에는 아주 길고 긴 기도가 이어졌다. 그의 탄생을 감사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바께오는 바닥에 숟가락을 6번 던지고 옥수수가 담긴 그릇을 2번 엎었다. 웃음을 참느라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매일 이 시간은 종교가 없는 내게 엄청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여러 명을 통해 올라갈 텐데, 어째서 신은 귀가 여럿 달린 형태로 그려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홈스테이 중 처음 먹은 메뉴는 시니강Sinigang이었다. 시큼한 생선(고기) 야채수프다. 한 입 떠먹고는 큰일이다 싶었다. 한겨울의 귤도 신 맛 때문에 잘 못 먹는 내가 이 시큼한 국물로 밥까지 먹으려니 너무 생소했다. 하지만 시니강은 첫날에만 나왔다. 나를 위해 준비해주신 특식으로 사실 가족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라고 한다. (!) 입맛에 맞지 않아도 소중히 숟가락을 들었을 식탁이지만 조금은 감사했다. 필리핀은 채소 값이 고기보다 배로 비싸기에 대부분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한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락토 오보 채식을 하던 중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는 그 나라의 주 식습관에 맞추기 때문에 베사오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걱정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아이들 건강 문제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가정이어서 채식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우 간을 세게 해서 먹는 편이었다. 내가 가족들에게 요리를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었는데, 내가 만든 모든 요리에 소금을 마구 넣어 드셨다. 나의 요리실력을 돌아보는 충격적인 계기기도 했다.


 락마안 마을은 정말 정말 좋았다. 팀원들은 대부분 킨이웨이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어서 교육활동이 아니라면 따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날이 많았다. (킨이웨이까지 가려면 조안의 차를 얻어 타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조안 일정이 안 되어서 킨이웨이부터 걸어서 집에 갔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베사오는 과거 성공회영국 국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성공회 신자다. 어느 바랑가이든 이 성당들이 마을공동체를 이어가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종교를 넘어서 마을회관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팀원들도 종교 상관없이 주일마다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갔다. 나는 락마안의 작은 성당으로 갔다. 이곳에서의 미사는 정말 영화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색색이 들어오는 햇빛. 아기 손장난에 얼굴을 부비는 이웃 노인. 교회 의자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내 발을 베개 삼아 늘어진 강아지들. 신부님의 위로와 농담. 서로와 눈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주민들.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했다.


 마을에 익숙해질 때쯤 휴일에 사일로스 생일파티에 갔다. 사일로스는 락마안에 사는 킨이웨이중학교 학생이었다. 한 집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듯했다. 나 또한 외지인이 아닌 마을 사람으로서 초대되었다. 집 안에 다 들어가지도 못해서 집 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서 놀았다. 엄청 큰 케이크도 있고이 곳은 직접 만든 직사각형의 레터링 케이크가 당연하고 익숙하다. 따뜻한 음식 또한 넘쳐났다. 숟가락이 모자라서 어른들은 밥을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나도 네팔 생각이 나 숟가락을 옆 아이에게 넘기고 손으로 덥석 집어 먹었다. 이웃 분들이 배를 잡고 깔깔 웃으셨다. 급기야는 먹고 있는 나를 둘러싸고 구경했다. 생일 축하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재롱잔치를 시작했다. 본인들끼리 순서를 정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나도 아이들 틈에 섞여 엉성하게 춤을 따라 췄다. 가족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의 주 프로그램은 킨이웨이초등학교 교육봉사였다. 아침 일찍 우리를 마중 나온 초등학교 학생들의 손을 잡고 등교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조례로 운동장에 전교생이 함께 모여 체조를 한다. 필리핀 프로젝트에서는 고학년과 유치부 교육을 담당했다. 극과 극인 집단이라 준비가 배로 들었다. 유아기 학생들을 마주하다가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것 같은’ 학생들을 마주하니 긴장했다. 종일 예민하게 임하다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여유를 찾았다. 핸드페인팅 활동 후에는 아이들이 장난치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물감이 잔뜩 묻은 손으로 학교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워니가 “이 친구들은 곧 졸업하니까 우리 프로그램이 마지막일 거야”라고 말해준 덕분에 용기를 낼 기회가 생겼다. 눈 딱 감고 물감 투성이인 아이들을 와락 안으며 내 옷이며 몸이며 물감을 묻히게 했다. 수업을 진행한 반나절 넘는 시간보다 몸을 맞부딪히며 놀았던 그 짧은 15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꼭 정보 전달만이 교육이 아님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6학년 수업 중에 워른이란 친구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엄청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새 종이를 받아갔다. 궁금해서 뒤따라가 지켜보니 새 종이에 열심히 강아지를 그렸다. 강아지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워른은 힛 웃으며 대답 없이 그림을 등 뒤로 숨겼다. 수업을 마친 후 교재를 정리하고 있는데 워른이 가방을 메고는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쪽지 접은 종이를 주고 도망갔다. 펼쳐보니 “I love animals”라고 쓰여 있는 토끼 그림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락마안 마을의 아이들이 놀러 와 있었다. 대부분 우리가 교육활동을 하지 않는 아가와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한국어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고민하다가 각자가 좋아하는 단어를 한국어로 알려주었다. 강아지, 장미, 미소, 독수리, 평화, 노랑. 이 친구들은 항상 몰려다녔은데, 모두 내가 가는 날 아침까지 찾아와 주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우르르 몰려와서는 한글로 쓴 편지와 직접 만든 팔찌까지 전해줬다. 대가 없는 환영, 내가 이런 사랑을 언제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정말 고맙고 기쁜 하루들이었다.     




 베사오는 축제날이나 손님을 환영할 때 전통춤인 강사Gangsa를 공연한다. 강사는 마을에 기쁜 일이 있을 때 서로의 안녕을 빌기 위해 다 같이 모여 쇠로 만든 악기인 공Gong을 치며 추는 춤이다. 필리핀에 한국 미디어, 특히 K-POP이 유행하면서 청년층이 필리핀의 전통문화를 괄시하는 흐름이 생겼다고 한다. 베사오 또한 우리에게 마을 전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찾아갈 때마다 교육봉사 외로는 베사오만의 특별한 전통인 강사를 전승하는 일에 집중했다. 강사는 풍물놀이와 비슷하여 한국인 팀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베사오 청년들과 한국인 팀원들이 서로의 전통을 교류하며 마을의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자 노력했다.

 강사는 정말 매력적인 춤이었다. 킨이웨이 뿐만 아니라 다른 바랑가이들에도 초대되어 문화교류를 하며 여러 형태의 강사를 배워볼 수 있었다. 강사는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눈 마주치며 추는 것이 특징이다. 그날의 분위기, 춤을 추는 상대, 날씨 등에 따라 몸짓이 달라진다.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곳의 전통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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