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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May 27. 2022

태우는 죽음 평온한 강

2018 네팔 파슈파티나트에서

 

 죽음은 삶과 가깝다. 삶이 있어야 죽음이 영원하고 죽음이 있어야 삶이 존재한다. 파슈파티는 죽음을 맞는 사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삶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공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바람으로 돌아가는 생명을 지켜보는 . 생생한 삶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수그러지는 죽음을 관조할  있는 . 생명체파슈 존엄파티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자리한 파슈파티나트는 시바의 사원이다. 힌두 3 신인 시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파슈파티' 붙여진 사원인만큼, 네팔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바그마티  가까이에 위치해있다. 강을 따라서는 화장터가트 있다. 네팔 세 번째 방문만에 파슈파티 나트가 처음이었던 나는 한 할머니의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 장작 위에 정돈한 고인을 눕힌. 북쪽에 머리를  고인 위로 짚이 덮인다. 유족은  곁을 돌며 소라고둥을 분다. 꽃과 씨앗, 마른풀, 빨간 물감 같은 것을 주변에 . 상주는 시신의 얼굴 쪽에 직접 불을 붙인다. 인간의 업은 대부분 입을 통하기 때문이다. 고인의 손과 발이 짚더미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생소한 풍경에 다리가 떨려 벽에 기댔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줄어들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 대화 소리, 노랫소리, 아기 울음소리,  멀리  경적소리. 고인 주변에서는 남겨진 사람들의 소음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에 비해 불이 내는 소리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가장 선명하게 들렸다. 타다닥 타닥. 떠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는 소리였다. 마지막  무엇이든 또렷한 법이다.


 네팔인(중 힌두교도) 바그마티 강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카르마의 사슬을 끊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유족들은 울며 슬퍼하기보다 추억을 꺼내며 고인의 행복을 바란다. 고인이 생전에 기도한 대로 바그마티 강에서 소산 되어 강에 뿌려지고, 천천히 갠지스까지 흘러간다.  강에는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가 손이나 나무막대로 물을 휘휘 젓는다. 버려지는 장작이나 옷가지들을 주워 사용하기 위해서다. 혹시나 있을 귀중품이나 노잣돈을 건져내기도 한다.  일부는 몸을 씻는다. 물이 쓰레기와 잿더미로 오염되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혼탁해져도 강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다.
 

 화장터에도 계급느껴졌다. 고인의 계급(카스트의 잔재와 자본)으로 들어갈  있는 화장터가 달라진다. 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위쪽(상류)의 화장터는 그야말로 피라미드 '' 있는 사람만 사용할  있다. 장작마저 질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좋지 않은 장작 위에 누운 고인  타지 하고 강에 뿌려진다. 자본은 죽음 앞에서도 강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픈 곳을  찔렸다.


 그럼에도 파슈파티나트의 화장터는 평온하다. 죽음 앞에서 '평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있는 곳은 이곳뿐일 것이다. 강과 함께 지내기 가장 편한 모습으로 단장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겸허해진다. 프로젝트 중이라 소식을 뒤늦게 았는데, 내가 이 곳을 찾은  한국에서는 할아버지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이 불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곳이다. 떠나는 자, 남은 자 모두가 마지막을 평온하게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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