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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l 20. 2022

나의 쓰기 찾기

우문을 시작하며

 지난달 동에게 글쓰기 모임 참여 의사를 묻는 전화가 왔다. 아주 신난 목소리로 “좋아!”라고 했다. 고백하자면 즐거움 잔뜩 묻은 대답은 그 제안 때문이 아니었다. 마침 산뜻한 봄의 제주도였고 카페에서 틀어놓은 노래와 섞여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참 좋았고 씁쓸한 커피 향에 취해 있었다. 다시 방구석으로 돌아와 첫 모임 날짜를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 두렵다.    

  

 내 인생 첫 글쓰기인 일기(숙제)는 매번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가 달렸다. 구구절절 일상만 나열해도 항상 끝에는 ’Good'이 적혀있었다. 이런 건조한 반응에도 나는 매우 들뜨곤 했다. 과연 내 일기의 어떤 내용이 굿이었을지 궁금해하며 제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몇 년 동안은 내 일기가 만화가였던 삼촌의 손에 넘어가 재구성되기도 했다. 나만의 것이어야 했던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경험은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짝꿍을 바꾸기 싫어서 친구들과 몰래 제비뽑기 종이를 바꾸거나, 할아버지에게 안기는 것이 싫어 일부러 아픈 척 울어버렸다는 못난 마음까지 들킨 것에 겁이 나기도 했다.


 그 후로 점점 일기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불필요한 단어를 하나 더 얹어 멋을 부리고 정성스럽게 거짓을 섞었다. 결국 나는 읽히기 위한 쓰기를 택했다.


 모든 첫 경험은 낡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는다고 했던가. 쓰는 것을 멀리하게 된 순간은 습관이 되어 아직도 나를 성가시게 한다. 혹자는 글을 쓰며 하루를 정리하고 평안을 얻는다고 한다. 정말 근사하다. 나는 고요하다가도 펜만 들면 눈보라가 몰아친다. 생각을 머릿속에만 두면 뒤죽박죽 어지럽게 있어도 괜찮았는데, 글을 쓰려면 이 생각들에 질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창작물을 보고 두 종류의 충격을 받는다. 새로운 영감이 마구 샘솟거나 탄복하는 마음으로 창작욕을 모조리 잃거나. 특히 글에 있어서는 대부분 후자다. <일간 이슬아>를 처음 구독했을 때는 감탄 섞인 질투심에 한동안 펜을 들지 못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 글쓰기 모임은 글로 나를 들썩이게 했던 사람들이 함께 한다. 일단 같이 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다. 나 자신 아주 기특하다. 평론, 영상, 연극, 소설 각 분야의 글쟁이들 앞에서 나는 그냥 망각에 몰락된 나부랭이임을 미리 솔직하게 밝힌다.


 짙어진 경계를 허물고 도망가는 언어를 붙잡고 흘러가는 시간을 쌓고 싶다. 그렇게 나의 쓰기를 찾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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