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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올디 Aug 22. 2024

흔한 3~4년 차 직장인의 착각

내가 없으면 부서가 안 돌아갈 거야

부서 배치를 받고 대략 1년쯤 지났을까.

후배들이 생겼고, 나도 부서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한 2~3년 간이 지금까지 내 회사생활을 통틀어 가장 재밌게 회사생활을 했던 때인 것 같다. 매일매일 새로운 업무를 받아 비슷한 연차의 친구들과 고민도 하고 의견을 나누며 해결하는 재미, 내가 새로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재미, 선배들로부터 하나씩 배워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는 재미.

회사 생활에 열정도 있었고 재미도 느꼈던 때였다. 그리고 퇴근하면 마음 맞는 선, 후배들과 모여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누었고, 옆 부서 사람들과도 친목을 나누면서 회사생활에 더욱더 재미를 붙여갔다.

이대로만 쭉 회사를 다닐 수 있다면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재밌게 일하면서 돈을 이렇게나 많이 받아도 되나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회사 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하다 보니 예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할 수 있었고, 부서 내에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평가는 다른 개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이 정도 했으면 고과를 받을만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실제로 주변 동기들을 봐도 한 두 명씩 고과를 받았다는 동기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난 후부터는 마음속 한구석에 항상 '말로만 잘한다고 하지 말고 고과 좀 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회사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회사 생활은 더 이상 재밌지 않았다.


한번 고과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나니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었다. 모든 일에 대해서 이 일은 가치가 있는지, 고과를 받는 것에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입사 후 3번째 고과면담에서도 상위고과를 받지 못한 나는 그 길로 일에 대한 동력을 잃어버렸다. 거짓말처럼 모든 일에 흥미가 없어졌고, 일 자체가 의미 없어 보였다. 당시 교대근무와 오피스 업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교대근무를 후배들과 하게 되면 후배들에게 일을 맡기다시피 하고 무기력하게 앉아있곤 했다.

그러다 문득 동기들과 메신저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나보다 업무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동기들을 보며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 해 2월, 야간근무 중간에 장문의 메일을 썼다. 새벽감성이었을까. 

부서장에게 더 성장을 하고 싶다는 빌미로 신생부서로의 이동을 원한다는 식의 메일을 보냈다.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저질렀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동기들에 비해 뒤떨어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상위고과를 받지 못한 불만이 뒤섞여 저지른 일이었던 것 같다.

그다음 주, 야간 근무가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부서장과 면담을 했다. 부서장은 자리가 나면 바로 옮겨주겠노라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한 2개월이 흘렀을까? 서서히 내가 메일 보낸 것도 잊힐 무렵 나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웃기지만 '여기 나 없으면 큰일 날 텐데?'였다. 당시 나는 교대근무를 하는 4개 조 중 하나의 조에서 리더를 맡고 있었다. 당시 내가 빠지면 리더를 할 만한 연차가 없기는 했었다. 그리고 부서 자체적으로 신생부서로 사람을 많이 보내던 때라 인원이 적긴 했다.

그래서였을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나는 어차피 가겠지만, 내가 떠나면 왠지 이 부서가 안 돌아갈 것 같고, 다들 내가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면서 곡소리를 낼 것이 상상되었다.

그렇게 나는 부서이동을 했고, 내 생각대로 처음 한 1~2주 간은 내가 맡았던 업무에 대한 문의 전화나 메신저가 많이 왔다. 그러고 한 2주 후부터 거짓말처럼 이전 부서는 잘 돌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의 내 자신감이 정말 부끄러울 정도다. 보통 입사 3~4년 차쯤 되었을 무렵, 부서 내에서는 실무를 도맡아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맘때 쯤 다들 하나의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나 없으면 우리 부서 안 돌아가!'이다.

사실 그럴 리가 없다. 물론 원래 하던 사람이 갑자기 빠지면 조금 우왕좌왕하겠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내 자리는 금방 메꿔진다. 3~4년 차 직원 하나가 빠졌다고 해서 그 부서가 안 돌아간다면 그 부서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3~4년 차 직원이 대체불가 존재가 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조금 덜 건방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원 한 명 한 명은 물론 소중한 존재이지만, 생각보다 3~4년 차의 빈자리는 금방 채워진다. 그걸로 너무 서운해할 필요도 없고, 내가 마치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 것처럼 건방 떨 필요도 없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필요하겠지만, 시야를 조금 넓혀 본다면 내가 과거에 했던 조금 부끄러운 행동들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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