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감정표현이 그럴지라도 마음은 아니었다.
‘미안합니다’로 미안한 마음을 이해하다.
나는 20대 후반에야 비로써 ‘미안해요’라는 감정과 함께 남한 사회의 정서를 느꼈다. 더욱이 ‘미안해요’라고 어휘를 말해본 경험보다 들어본 경험이 더 우선이었다. 처음으로 ‘미안해요’를 들었을 때, 무엇이 미안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따뜻해졌다. 상대방이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우선 용서가 되기도 하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면서 함께 사과하게 된다. 행동으로 하여 감정이 생겨나기에,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자기 행동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히 함께 사과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내가 직접 느낀 첫 경험으로,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한다. 나의 이 경험은 남한 사람들의 오해와 갈등의 해결 과정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그렇게 따라 해봤다. 이게 바로 남한의 ‘미안해요’의 사회적 정서이지 않을까 싶다.
‘미안해요’라고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해준 사람은 지하철에서 부딪친 한 여성이었고, ‘미안해요’라는 감정의 표현을 하도록 해준 사람도 역시 지하철에서 부딪친 한 여성이었다. 나는 북한의 ‘정치적 용어’들을 남한에서 감정의 어휘로 배우는 중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정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감정과 성인이 되어 느낀 감정의 변화가 있을 테니깐.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외로움이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만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의 변화이다.
나의 과거는 북한 사회이고, 현재는 남한 사회이다. 두 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감정표현의 왜곡으로 하여, 나의 감정은 다르게 느껴진다. 감정표현 왜곡으로 나는 과거가 허무했다.
나는 과거를 인정하고, 현재도 인정한다. 과거의 감정도 소중하고 현재의 감정도 소중하다. 과거와 현재가 물리적 환경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한다.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한다.
감정을 인정하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정한다고 하여, 그때의 감정이 잘못되었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 자연스럽고 유효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그 감정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감정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했다. 그래야 나의 감정이 제대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야만 현재의 감정표현이 왜곡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어휘는 어떤 상황에서는 아름답기도 하다. 바로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