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1-4. 감정표현이 그럴지라도 마음은 아니었다.

by 소수지

4. 감정표현이 그럴지라도 마음은 아니었다.

감정표현이 왜곡되고 서툴다고 하여 그러한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현재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안합니다.

‘미안’은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남에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움을 뜻하는 사과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아니면 친구로부터 ‘미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안’을 20대에 소소하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2009년까지도 남한에서는 좌측보행이었다. 북한에서 도로 및 도보의 방향은 우측보행이다. 우측보행을 20년 넘게 한 나로서는 습관이 되었고 남한에 와서 좌측보행은 불편하고 어색하였다. 나는 전철이나 보행로에서 자주 우측보행을 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과 자주 부딪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길을 지나가다가 한 여성과 부딪쳤다. 나는 얼른 그 여성과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북한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지금 상황이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부릅뜬 눈으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줘서 ‘잘못했습니다’라는 얘기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여성은 나와 다른 행동을 하였다. 잠시 혼돈이 왔다. 그러면서도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어머머, 미안해요’이다.

재빠르게 머리를 숙이면서 지나가는 말투이다. 나는 그의 행동이 놀라웠다. 그 여성의 대처 행동은 아주 빠르고 습관적이었다. 나는 들리는 소리에 반응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해 주었다.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하다 보니 이해가 안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왜 죄송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미안해요, 죄송해요’로 표현해 주니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도 미안하다는 사람에게 눈을 부릅뜨는 내가 민망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보니 깨달은 것이 있었다. 부딪치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미안해요, 죄송해요’를 사용한 경험이 없다. 사회에서도 부모에게서도 ‘미안해요’의 감정의 표현을 받은 적이 없고 그렇게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미안해요’라는 어휘를 처음에 듣는 순간,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또 부릅떠지는 눈보다도 ‘음!. 아. 아니에요. 일없습니다(괜찮아요)’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면, 북한에서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어휘가 없을까?

북한에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라는 어휘는 있으나 흔히 사용하는 어휘는 아니다. 미안한 감정보다는 잘잘못을 따지는 어휘가 있다. 바로 ‘잘못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이다. ‘잘못했습니다’라는 통상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김 씨 삼부자의 교시나 정책, 업무(명령이나 임무) 등을 관철하지 못했을 때 또는 위반하였을 때 사용하는 공식 언어이다.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방침을 관철하지 못했을 때, 수령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는 정치적인 용어로 쓰인다. 또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학생이 교사에게, 일반인이 간부에게 흔히 사용하는 어휘이다. 마음의 감정보다는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고치겠습니다’라는 어휘도 있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어휘는 아니다.

북한에서 감정은 후차적이다. 잘잘못을 먼저 따져야 한다. 여기에서 ‘잘잘못’은 당의 방침이다. 당의 방침은 곧 김 씨 삼부자의 교시로 정치적 문제로 연관 되어있다. 김 씨 삼부자의 교시를 어기는 것은 ‘범죄’로 된다. 북한의 정치적 ‘범죄’ 행위는 엄격한 처벌 대상이고 반역자로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잘잘못을 먼저 따지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보다도 김 씨 삼부자의 사상에 기초한 잣대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미안’은 계속 함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기도 한다. 자신의 불안, 불편한 마음, 부끄러움과 함께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안한 감정과 마음이 없을 것이다. ‘미안’은 과거 관계 형성의 감사함과 현재 관계의 갈등 해결과 미래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전 06화감정에 따라 마음이 생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