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01
흔히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한다. 이 경구는 단편적인 것만 보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 판단하는 착오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여태 우리 삶의 충실한 지침이 되어 왔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숲을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이유는 작금의 사회적 이슈들을 볼 때, 이 세상은 본질을 보지 못하면 전체를 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속 빈 껍데기로 포장된 이상한 사회라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훈적이던 큰 숲을 보라던 가르침 속엔, 그 숲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 속에는 수많은 양심들이 상처를 입고, 삶을 포기하고, 정의는 오해받고, 불의는 타협되고, 지켜져야 할 영혼은 짓밟히고, 심판받아야 할 영혼들이 개판을 치고 있다.
오늘 아침의 기상은 다른 날과는 달리 유난히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비몽사몽간에 상처 입은 수많은 양심들과 그들 사이에서 기생하는 수많은 기만들이 나의 얕은 의식 속에서 요동을 쳐대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맞아 내 의식은 깨어났음에도 머릿속은 난장판이 되어 어지러움만 가득하다.
의식을 깊게 잠재우지 못한 긴 밤은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었다. 으쓸한 새벽 공기에 밤을 겨우겨우 버텨낸 몸뚱아리는 무척 지쳐있다. 몸이 천근만근이 된 듯 작은 움직임조차 버거운 아침이다. 며칠 추워서 그런지 몸이 많이 굳어버린 느낌이다. 얼마 전에는 벌써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시베리아 칼바람 부는 한겨울이 되돌아와 있다. 날씨란 게 참 요망스럽다. 계속 추운 것보다 한번 따뜻했다가 추워지면 더 춥다. 이런 추위는 더 힘들게 느껴진다.
의식이 충분히 쉬지 못한 채 밤을 버텨낸 머리가 너무 무거워 좀 더 누워있으니 몸은 점점 더 굳어지고 사고는 반대로 요동을 친다. 마치 여명에 날카롭게 베어진 어둠의 조각들처럼 수많은 의문들이 비수가 되어 머릿속에 깊숙이 박힌다.
머릿속을 혼란하게 하는 수많은 생각들, 의문들, '이 뭣고?'를 시작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잡상들,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어디로 흐르는 것인가?', '삶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지금 내 앞에 보이고 들리는 어지러운 것들 중, 나무는 무엇이고 숲은 무엇인가? 왜 내 눈에는 나무는 보이질 않고 녹색 크레파스로 칠해진 숲만이 보이는 걸까? 왜 숲은 보이는데 나무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혹시 저 숲 속의 나무들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나무색이 아니라 검게 뭉개져 버렸기 때문에 세상은 나에게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 보고 있는 흐릿한 이미지가 그렇게 교훈적이던 숲이라면 나무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며,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왜 보지 말라고 했으며, 왜 감추어져 있는 것일까? 도대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도무지 시원한 해답들을 찾을 길이 없다. 크게 보면 나아질까? 넓게 생각하면 많이 보일까?
숲이 내가 보아야 하는 현실의 문제라면, 그리고 나무가 내가 찾아내어야 하는 삶의 본질적 이유라면 나는 지금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 즉 삶의 이유를 찾아 멀고 높은 산을 올라야 하는 가장 큰 곤란을 겪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제 그동안 나를 기만해왔던 숲이 보여주는 현실의 큰 문제, 즉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본질적 나무를 찾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싶다. 내년이면 갑이 돌아온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