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정치편향 1

일상 : 깨진 안경알 너머 세상 26

by 정로각심

나뭇잎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린다고 해서 본질이 감춰지거나 순수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을 더 자극하고 불필요한 상상력만 키워낼 뿐이다.


바위로 계란을 친다고 해서 천만년을 버텨온 바위가 상처를 입거나 흔들리거나 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인 자극은 바위에 세월의 훈장만 만들어 줄 뿐이다.


하나의 도덕적 기준이 두 개의 이념에 통용될 수 없다면, 두 개의 도덕적 기준을 성립시키면 될 것이다. 신과 인간, 정치와 종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리고 보수와 진보...


우리의 역사는 항상 대립적의 이념의 관계 속에서 두 개의 도덕적 판단기준을 유지시켜 왔다. 단지 시대에 따라 강약이 달랐을 뿐이다.


고려는 호족 중심의 지방 세력과 중앙 귀족·관료 중심의 집권 세력, 그리고 기득권의 권문세족과 개혁의 신진사대부가 대립하였으며, 조선은 집권 엘리트 중심의 권력 독점해 온 세도정치와 공정한 권력 분배 및 조화를 주장한 탕평론의 입장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둘 다 양심이고 도덕이었다.


지금의 우리 앞에는 무식하게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이념과 조급하게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두 개의 이념이 대립된 상황이 놓여있다. 전자에겐 국가의 안녕을 유지시켜 온 위대한 업적이라는 도덕적 기준을 후자에겐 위협과 탄압을 무릅쓰고 민중의 힘을 일깨워 온 용기라는 도덕적 기준을 세워 줄 수 있다.


따지고 보니 이들의 이념에는 차이가 없다. 둘은 양극이 아니라 하나의 극, 모두 나라의 긍정적 발전을 위한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두 이념은 발전이라는 기준 앞에서는 언제든지 타협 가능한 것들이다. 타협이 가능하다면 답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무식하게 물고 늘어지고 하지 말고, 일찌감치 아니다 싶으면 지금 당장의 서로의 전복을 꿈꾸는 데 쏟고 있는 아까운 정력은 미래의 혁명적 발전을 위해 아껴두자.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파멸시키려는 짓 따위는 전혀 필요 없는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알면서도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국민적 대의가 아니라 대국민적 사기이다. 그냥 힘이 있는 한쪽이 끌고 가면 되는 것이다. 힘없는 쪽은 대립이 아니라 견제만 하면 된다.


견제는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잘못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사고 없이 잘 가도록 주의를 주는 것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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