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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석 Feb 03. 2019

야채와 계란, 방송에서 숨진 채 발견

방송에서만 쓰는 어떤 단어들

방송에서 쓰는 한국어는 생활 한국어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일상생활과 유리된 단어들을 사용할 때이다. 아래 단어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지만, 방송에서는 거의 금지어인 듯하다.


# 야채

일본식 한자어라는 자격지심 때문일까? 예능프로 등에서 출연자가 입말로 야채라고 말해도, 자막으로는 채소라고 교정당한다. 앵커, 아나운서 들이 소위 순화어로 말하는 것은 이해가 되어도, 이미 뱉은 말을 굳이 자막으로 교정해주는 것은 어쩐지 불쾌하다. 삐딱하게 보면, "너(출연자와 시청자)는 틀린 말을 하고 있으니 내가 고쳐주겠어!" 같은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전현직 업계 종사자의 의견에 따르면 특별히 가이드는 없으며, 입말과 자막의 차이는 자막 작업 중 일괄적으로 맞춤법 교정하면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라고 한다.)


# 계란

야채와 마찬가지로, 방송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달걀이라고 쓰고, 교정당한다. 계란과 달걀 둘 다 표준어이지만, 국립국어원은 순우리말인 달걀을 권장한다. 계란찜, 계란말이, 삶은계란 등의 활용형도 모두 교정당한다. 야채/채소는 사람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달걀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내 주위엔 하나도 없다. 일상생활에서 외면받는 단어를 언론에서만 쓰는 것을 볼 때마다, 나와 언중의 표현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 죽다

뉴스에서 이런 표현을 종종 들었을 것이다.

"60대 아무개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아무소 씨는 아무닭 씨를 이러저러하여 숨지게 한 혐의로..."

이렇게, '죽다' 대신 꼭 '숨지다'라고 쓴다. '죽이다'도 안 된다. '숨지게 하다'이다. 시체가 발견되어도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써야 한다. '죽다'의 강렬한 어감 때문일까? 반면 '숨지다'는 너무 문어적이고 예스러운 표현이다. 그 동떨어진 감각 때문에 오히려 '숨질래요?'와 같은 언어유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널리 쓰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말들 말이다. 짜장면(자장면)이 복권되었고 설거지(설겆이)가 쓰기 편해졌듯이, 투덜투덜이 모이면 언중의 말과 인정받는 말의 간극이 좁혀질 것이라고 믿는다.



# 참고 링크

야채 vs 채소 네이버트렌드 / 구글트렌드

계란 vs 달걀 네이버트렌드 / 구글트렌드

야채는 일본식 한자어인가? (나무위키)

야채, 계란 이야기 (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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