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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석 Feb 28. 2019

대리님,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직장생활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수동공격적 말습관

사무직 직장인은 하루의 대화량 중 절대다수가 직장 내에서의 대화일 것이다. 직장 대화는 업무라는 기능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상 대화와는 사뭇 다르기도 하고, 관용구처럼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 있다. 어떤 것은 마치 외교적 수사처럼 재밌기도 하고 어떤 것은 수동공격적인 특성을 띠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오늘은 후자 얘기를 끄적여보고자 한다.


Disclaimer: 하지만 이는 나의 주관적 판단이고 내가 아래와 같은 말을 안 쓰고자 노력한다는 것이지, 이 표현을 쓰는 분들이 내가 생각하는 바와 같은 부정적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한편 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의도와 효과는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아래와 같은 말을 쓸 때 당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를 비롯해 누군가는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 그런 식으로

"이번 건은 이러이러하게 가기로 했었는데 A팀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하셔서~"

번역: 나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는데 A팀이 무례하게/왜곡되게/기타 나쁘게 말했다. A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 표현은 메시지의 내용보다 메신저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상대방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느낌을 준다. 약간 너는 그런 식으로밖에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같은 느낌. 나는 "그런 식" 자리에 상대방이 실제 한 말이나 일을 채워넣으려고 노력한다.


# 그건 아닌 거 같아요

A: 이건 이러이러하게 해보면 어떨까요?

B: 음... (긴 침묵)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정색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번역: 너의 의견은 사리와 이치에 맞지 않고 내 생각과는 다르며 수용할 수 없다.

이 표현은, 업무에 대한 의견제시를 다분히 도덕적인 당위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건 (     ) 아닌 것 같다" 사이에 생략된 말은 실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사업목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인지, 지금 리소스로 비현실적인 계획이란 건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건지 등의 내 판단을 숨기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수사만이 남는다. 나는 그냥 "안돼요." "불가능합니다." 같은 직설적 표현을 사용한다. 그 다음에는 아는 한에서 "왜냐하면~"을 달고.


# ~거 아니예요?

그건 최상단에 노출돼야 하는 거 아니예요?

번역: 원래 어떠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너의 행동이나 주장은 그것을 어기고 있다.

예전의 합의 또는 관행, 판단 등을 당위로 간주하는 표현이다. 일본어투 같기도 하고, 일상어에서도 약간 어미처럼 붙는 표현인데, 묘하게 ~한 거대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상대방의 어깨에 얹어주게 된다. (사실 나도 습관적으로 내뱉기도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는 가급적 근거를 붙여 얘기하려고 노력한다. 기억이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빈칸을 뚫어두고. 이를테면 "그건 지금 언젠지 기억이 안나는데, 최상단에 노출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 솔직히

솔직히, 이번 프로젝트는...

번역: 이제부터 욕을 하겠다.

면죄부 같은 접두어이다. 솔직하게란 단서를 붙였으니 아무말해도 괜찮지? 같은 느낌. 나는 "이번 프로젝트는 좋게 말하면 (외교적 표현), 나쁘게 말하면 (욕)" 이렇게 한다.



수동공격이 언어학적 또는 심리학적으로 엄밀히 정의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위에 언급한 예시들에서 내가 생각하는 수동공격성은,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성향인 것 같다. 그러한 말을 듣는 것이 싫고 내가 하는 것은 더욱 싫었고, 그래서 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을 의도적으로 몇 년간 실험해 보았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는 나를 대화하기 힘든 인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것도 뭐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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