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밥에서는 깁스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엄마가 싸준 김밥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그걸 ‘깁스 냄새'라고 불렀다. 엄마가 깁스한 손으로 김밥을 만들기 때문에 김밥에서 깁스 냄새가 나는 거라고, 나는 굳게 믿었고 거칠게 불평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구미로 오는 길에 크게 넘어진 엄마는 왼손의 손가락 뼈에 금이 갔는데, 완전히 회복되려면 2달 정도는 깁스를 하고 있어야 된다고 했다. 깁스를 하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뻣뻣하지 않게 생활하셨다. 평소처럼 양 손으로 쌀을 깨끗이 씻고, 밥을 지으며, 손빨래를 하며, 손걸레질을 하셨다. 초등학교에서 소풍 간다고 도시락이 필요하다 했을 때, 엄마는 곤란해하기는커녕 더 맛있는 김밥을 싸주겠다고 김밥 재료를 왕창 사셨다.
구운 김을 놓고, 밥을 얇고 고르게 펼친 다음, 계란지단, 우엉, 시금치, 햄, 당근, 맛살 등을 한가닥 씩 올리고 나서 김밥 말이로 둥글게 모아주면 완성되는 한 줄의 김밥. 엄마는 같은 동작을 몇십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어린 나와 동생은 옆에서 맛살이 더 맛있는지, 햄이 더 맛있는지를 놓고 먹으면서 토론하고 있었다. 엄마는 “야야, 그것만 먹다가 나중에 햄이랑 맛살 없는 김밥 먹는다.”라고 하시는 바람에 우리의 시식 토론은 매듭 되었다. 엄마는 깁스한 손으로 엄청 많은 김밥을 만드시는구나,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어, “엄마 내일 나 혼자 이거 다 먹는 거야?”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을 때, 엄마는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 오늘 저녁 메뉴야.”라고 하시며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의 ‘부상 투혼’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전날 저녁 메뉴로 김밥을 먹어야 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음식 먹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식사기도를 마치고 김밥 하나를 입에 넣자마자 나는 ‘우웩’이라고 하며 뱉고 말았다. 김밥에서 깁스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뭐라 할 수 없는 역하고 쓰라린 냄새가 김밥 재료 사이에 섞여 들었다. “엄마, 여기에서 깁스 냄새 나!” 응?이라고 하시던 엄마는 한번 먹어보시더니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라고 대답하셨다. 깁스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깁스 냄새를 못 맡지, 라는 생각에 나는 옆의 동생과 아빠에게도 얼른 먹어보라고 재촉했다. 두 사람 모두 김밥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몇 번 입에서 우물우물하던 아빠는 “냄새 안 나구만.”이라고 하셨고, 동생 역시 “그냥 김밥 맛이야.”라고 말했다. 왜 아무도 깁스 냄새를 맡지 못하는지, 이렇게 역하고 독한 냄새에 어찌 이렇게 둔감한 건지 당시 나는 몹시 답답해했다.
맞다. 내가 과민했던 것이 맞다. 나는 깁스 냄새가 어떤 건지도 모르고, 김밥에서 맡은 그 냄새가 정말 ‘깁스 냄새’가 맞는지, 아니 정말 ‘깁스 냄새’라는 게 있긴 한 건지 조차 모른다. 어린 마음에 깁스한 손가락이 괴기하게 보여서, 의식이 내 후각을 속인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당시의 나는 헛구역질 나는 김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다며 발버둥 쳤고, 결국 엄마는 비닐장갑을 끼시고 다시 내 소풍 김밥을 만들어야 했다. 소풍 당일, 식사시간에 나는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었다. 여전히 깁스 냄새가 짙었다.
결국 나는 김밥을 고스란히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밥 잘 먹었냐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 그 냄새 때문에 점심 하나도 못 먹었어!”라고 표독하게 소리치고는 도시락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야,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될 거 아이가. 배고파서 어떻게 참았어.”라고 엄마는 도리어 내 허기를 걱정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깁스한 손가락으로 내가 남긴 김밥을 하나씩 집어 드셨다.
이 주 전 일요일, 나는 차 사고를 냈다. 사람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차 2대가 다쳤다. 쉐보레 차는 오른쪽 범퍼가 부서졌고, 소나타 범퍼에는 얇은 기스가 났다.
일이 있어 해외로 출국한 아빠를 대신해서 나는 설교와 예배 인도, 그리고 차량 운행을 했다. 지금 시간이면 할머니 벌써 준비 다하고 기다리고 있을 거니, 할머니 집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면 된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문득 생각했다. 할머니 집에 들어가 본 게 언제더라. 가물가물했다. 참, 할머니 집은 몇 동 몇 호더라. 할머니가 계신 아파트 앞에 도착한 다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할머니는 계시지 않으셨다. 식탁에는 막 식사를 마친 듯 밥풀 몇 개가 묻은 그릇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고, 방에는 할머니의 겉옷이 여러 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화장실에 계신가 싶어 봤더니,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물기가 화장실 바닥 곳곳에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안계신다고 하자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며 당황해하셨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진작 준비를 다 마치고 목 빠져라 기다리실 텐데, 지금 그곳에 없으시다는 게 이상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더운 날씨에 바깥으로 나가셨다가 어디 쓰러지신 건가?”라고 하시며 걱정하셨다. 순간 불안해졌다. 이 폭염 아래에서 정말로 할머니가 어딘가에 쓰러져 계신다 생각하니, 몹시 아득해졌다. "엄마 그러면 내가 한번 주위를 돌아다녀볼게."라고 황황히 말하곤 끊었다.
원래 이렇게 갑작스러운 건가.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로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 몰랐음을 자책하고, 불안해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동을 걸었다. 재빨리 아파트를 빠져나오다가, 노인정 앞에서 지친 얼굴로 앉아계신 할머니를 발견했다. 무척 안도되어서 조금 눈물이 나려 했는데, 할머니가 보실까 봐 겨우 참았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 시동을 끄고 달려가 할머니의 짐을 받았다. 이제 할머니를 모시고 차로 가려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짐을 던지듯이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곳이 경사진 곳이라는 걸 내려가는 차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내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것도, 기어를 P에다 두지 않은 것도, 모두 뒤늦게 알았다. 안간힘을 다해 운전석의 문짝을 잡았지만, 차는 내려가면서 속력을 더해갔다. 이대로 가속이 붙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 소리를 지르면서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다. 줄다리기할 때처럼 몸을 뒤로 한껏 젖히면서 손에 힘을 주었지만 이미 속력이 붙어버린 차를 세울 힘이 내게 없었다. 그때 나는 아이언맨을 얼마나 간절하게 떠올렸는지. 그 어쩔 수 없음에 몹시 화가 난다. 차는 결국 소나타를 스치면서 지나고 쉐보레와 큰 소리로 부딪히면서 멈췄다.
모든 것이 환영처럼 일렁였다. 깊은숨만 아득하게 나왔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엄마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피해 차주분들의 전화번호로 전화하려 했다. 내가 이미 다 연락했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다시 한번더 전화할게라고 하셨다. 핸드폰을 든 엄마의 왼쪽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손도 조금씩 떨렸기 때문이다.
사고난 그날은 11일 일요일, 말복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이제 끝이라서 더위는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엄마는 중복 때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삼계탕을 먹자고 하셨다. 칠천 원으로 산 닭 두 마리에, 인삼과 대추, 그리고 부추와 찹쌀을 넣어 푸짐하게 만들어 먹은 중복날의 삼계탕. 엄마는 싸게 샀는데도 양이 많다고 좋아했고, 나는 맛있다고 좋아했다. 그 맛이 떠올라, 엄마의 제안을 듣고 대답하기도전에 침이 입안에 고였다. 교인들이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아침부터 엄마는 의욕을 갖고 계셨다.
엄마는 교인들에게 푸짐하고 맛있는 삼계탕을 대접하는데 실패했다. 닭과 인삼을 넣고 푹 삶아야 하는데, 끓인 지 4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엄마는 사고 소식을 들었고, 곧바로 가스불을 끄고 달려갔으니. 국의 맛이 진하지 못하고 옅을 수밖에 없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무슨 정신으로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든든하게 먹어라.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해보자.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숟가락을 드셨다. 숟가락이 흔들리면서 국물이 조금 떨어졌다. 사고의 당사자인 내가, 사고의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모든 짐을 다 짊어지려는 엄마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일은 무척 어려웠는데, 며칠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겨우 시도해본다. 그날 엄마의 마음을. 떨리는 손을.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교회로 오니, 벌써 정해진 예배시간에서 35분이 지난, 11시 35분이었다. 정신없이 예배를 드리고나니 12시 15분이었고. 30분에 모두 점심 식사할테니, 15분만이라도 요리할 시간을 달라고 엄마는 분주하게 교인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재빠르게 가스 불을 켜고, 탕을 끓이며, 간을 봤을 것이다. 그 삼계탕 만이라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요리를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끓는 동안 다시 사고를 떠올렸을 것이다. 피해 차주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생각했을 것이고, 차마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미워할 수 없는 아들을 멍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얼굴에선 땀이 덜 잠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흘러내렸을 것이고, 국자 쥔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교인들의 손을 잡고 인사했을 것이다. 괜찮다고 도리어 의연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놀라셨을 할머니에게 청심환을 챙겨 드렸을 것이다.
그날, 말복의 삼계탕. 유난히 국물이 말갛고 슴슴한 마지막 여름 보양식. 평소였다면 나는 소금을 많이 뿌려서 먹었을 테지만, 그날 나는 아무 소금도 넣지 않고 먹었다. 맛있게 먹는다는 게 어쩐지 죄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도리어 국물 맛이 소금을 넣었을 때보다,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맛을 감각할 때마다 불쑥불쑥 치솟는 죄책감과 자기모멸감이 입 안을 타고 속으로 들어갔다. 문득 엄마의 손을 떠올렸다. 전에 내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몹시 놀라거나 당황한 사람들에게 으레 나타나는 징후인, 떨고있는 손을. 엄마는 손을 떨면서, 이 삼계탕을 다 만드셨구나. 깁스한 손으로 김밥을 만들고, 떨리는 손으로 삼계탕을 만드셨구나. 그날 입맛이 없었는데, 그래서 다 못먹을 것 같았는데, 내 몫의 삼계탕을 다 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삼계탕에선 엄마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