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자주 기억하는 일
기억을 자주 기억하는 일
내 기억의 시작은 성주라는 지역에서였다. 네다섯 살 무렵 어렸지만 자의식이 유독 강해서 그랬는지, 하루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어린이집에 가보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하고 나는 발걸음을 현관 밖으로 힘차게 뻗었다. 두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몇 걸음 못 가 다리는 자주 후들거리며. 그렇게 나는 한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리를 건너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나는 그걸 사진처럼 평면의 이미지로 기억하는데, 부모님은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맥락을 말씀해주셨다.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내 의지가 제법 완강해 보여서 부모님은 내 결정대로 혼자 가라고 내버려두시(는 척 하)고, 몰래 내 뒤를 따라오셨다고 한다. 걸으면서 나는 자주 뒤돌아 봤는데, 그건 ‘부모님이 정말 안 따라오면 어쩌지’라는 불안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따라올까 봐’ 감시하려는 사람 같았다고. 그러다 부모님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렇게 짜증과 화를 냈다고 한다. 결국 내가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부모님은 살금살금, 범죄자를 잡는 형사처럼 아주 조용하게 미행을 하셨다고 말했다.
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복숭아 밭에 놀러 가기를 즐겼다. 집에서 밥 먹을 때나, 놀 때나, 자기 전에라도 나는 “할비, 뚜따비 타고 복숭밭에 가자”라고 소리쳤다고. 그럴 때마다는 아니지만, 그럴 수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허허, 그래. 가자.” 하시며, 나를 앞에 태우고 복숭아 밭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나는 할아버지가 나무 잔가지를 치는 모습, 복숭아를 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지겨워지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한참을 뛰어놀다가 지쳐서 잠이 몰려오면, 할아버지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나를 눕히고 나뭇잎으로 덮어주셨다고 한다. 마치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어른어른거리면서도, 언제든 눈앞으로 펼쳐낼 수 있을 만큼 생생한, 나와 함께 늙어온 기억들이다.
이틀 전 저녁, 엄마는 지호에게 물었다.
“지호야, 우리 한 달 전에 어디 갔지?”
“서 울 역!”
지호가 한 음절씩 끊어서 대답했다.
“그러면 서울역에 뭐 타고 갔지?”
“새 마 을 깃 차!”
“맞았어! 새마을 기차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다음, 우리 어디로 갔지?”
“사 랑 의 교 회!”
“거기에서 뭐 봤어?”
“음… 큰 스티커 많 이 봤셔.”
한 달 전, 부모님은 지호를 데리고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그날은 마침 수요예배를 드리는 날이라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서초 사랑의교회로 갔다. 그곳에서 지호가 봤다는 ‘스티커’는 천장에 붙어있는 사각형 LED 등을 말하는 거다.(지호는 지금까지도 그게 엄청 큰 스티커인 줄 안다.)
어제 지호는 나와 함께 소파에 앉아있다 말고 대뜸 말했다. “사랑의교회 머싰어.” 내가 ‘지호야, 우리 나중에 또 갈까?’라고 묻자, “응!”이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곳이 서울인지, 서울과 구미는 무엇이 다른지, 호텔에서 자든 집에서 자든 뭘 알까, 싶었는데 이 조그만 아이가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는 게 대견하면서도 기특하다. 더듬거리지 않고 바로 기억해 낼 정도로 지호는 돌아온 한 달 동안 그 일을 자주, 오래 떠올리곤 해서였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뭉클해진다. 아마 아이는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만큼 오랫동안 미소를 머금었을 것이다.
내가 구미에 도착한 날, 마중 나온 아빠와 엄마는 이렇게 대화했다. “가만 보자. 정식이도 어릴 때 할비라고 하지 않았나.” 그 나이의 어린애들은 으레 ‘할비’라고 하지 않나 싶어 나는 “그럼, 세미(동생)는 그때 뭐라고 했어요?”라고 물었다. 엄마는 대답했다. “세미는 똑바로 불렀다. 할아버지라고. 너만 할비 할비했지.” 맞다, 나도 어릴 때 할비라고 불렀지. 미처 생각지 못한 기억을 누군가 말해준다면,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호는 지금의 나처럼 컸을 때, 자기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할비라고 불렀다는 걸 기억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을까.
어쩌면 한번 새겨진 기억은 영영 죽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자주 찾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잊어버렸다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기억을 자주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언제든 눈 앞으로 펼쳐낼 수 있는 기억이 지호에게 더 많아지기를. 그 기억과 함께 나이 들어가기를. 다섯 살에 처음으로 나는 서울에 갔고, 그곳에서 할비와 삼촌의 손을 잡고, 때로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서 사랑의교회에 갔다고, 거기서 본 큰 스티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언젠가 어른이 된 지호가 웃으며 말해주기를. 오늘이라는 무거운 시간의 하중을 기억이 종종 덜어주기도 하니까. (2019.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