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건 곡선 같은 건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곡선의 정점, 그 짧은 너비만큼이나 그건 찰나에 가까운 건가. 이번 설 할머니는 세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사 짧다. 순식간이데이”. 그 말이 왜 그리 오래 기억에 남았던지. 설 당일 전날, 나는 전을 부치고 있는 아빠와 엄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서 더 그런 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이 더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실에서 주무신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허리부터 다리, 허벅지가 아프다고 말했고, 아빠는 마사지 건으로 엄마가 가리킨 부위에 묵묵히 댔다. 어깨를 숙이고 고개도 푹 숙여서 그런지, 몰라보게 야위고 늙은 아빠의 모습이 잔상에 남는다. 내가 마사지 해 드렸어야 하는데, 라는 아쉬움이 이제야 든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 내가 아는 아빠와 엄마는 여전히 젊고 활기찬 분들인데.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늙게 되었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사이의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격차를 감각하며, 왜 그것이 그토록 애석한지, 이유를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불가능한 소망인, 두 사람이 늙어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그러나 이런 실현 불가능한 소망 따위는 애초부터 말하지 않는게 마음 편한 것 같다. (2021.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