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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Jul 10. 2018

멋진 사람이 있어요 This Charming Man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음악영화라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더 스미스의 탄생 비화라고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스티븐 모리세이를 놓치고 말 것이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훗날 더 스미스(The Smith) 라는 걸출한 밴드의 중심이 되었던 스티븐 모리세이라는 인물의 흔적을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추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스티븐 모리세이’에게 바치는 헌정 영화이자, 모리세이의 나레이션으로 구성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자전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1976년 맨체스터에 살고있는 모리세이(잭 로던)는 늘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닌다. 스쳐가는 생각을 수첩에 부지런히 기록한다. 수없이 되뇌었을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옮기며, 또 옮긴 글을 타자기로 쳐서 종이에 옮기며, 그렇게 완성한 글을 신문 독자기고란에 투고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사실, 그를 평범하다고 묘사하기에는 그의 성격과 약간 차이가 있다. 그는 평범함을 넘어, 극도로 소심한 사람이다. 낯선 사람과 대화는커녕,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 함께 밴드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도, 적힌 연락처에 전화조차 하지 못한다. 모리세이를 만나기 위해 빌리(애덤 로렌스)가 찾아왔지만, 낯선 사람이므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모리세이는 도망간다. 빌리와 겨우 친해져 그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려 마이크를 잡지만 끝내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나 소심한 모리세이는 어떻게 더 스미스라는 밴드의 보컬이 될 수 있었을까. 


소심해서 타인과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그의 모습을 찌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스티븐 모리세이의 세계는 더욱 단단한 게 아닐까. 그의 삶을 지탱하던 것은 누구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자신 혼자만의 세계였으니까. 하지만, 단단하게 웅크렸던 그의 세계를 남들이 볼 수 있도록 꺼내준 건 다름 아닌 타인이었다. “너만의 세상을 만들어. 오직 너 자신만이 유일한 너야”라고 말한 누나 엘리자베스 모리세이, “좀 더 과감하게 써도 돼요”라고 조언했던 친구 린더, 모리세이를 인내해주던 빌리와 좌절하던 모리세이를 찾아 집으로 온 조니 마까지. 그러니까, 찌질한 그의 세계는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었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난생처음으로 했던 공연이 대성공으로 끝났다. 런던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속에서 조심스레 올라왔다. 그러나 결국 런던에는 빌리 혼자만 가게 되었다는 실망스러운 소식. 모리세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둘이 있을 때의 위안은 지나치게 감미롭지만 혼자일 때의 외로움은 과도하게 쓰라리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샛노란 빛에 취해 무망한 희망을 품을지라도, 설령 희망이 끝내 실망으로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빛을 보기 싫어 커튼으로 가릴지라도, 언제까지 그는 축축한 절망의 자리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다. 모리세이 자신이 쓴 가사처럼, “인간은 기도하고 구원받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멀리서부터 방 안으로 스며든 희망의 빛은 커튼으로 가린다하더라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니까(There is a light and it never goes out - The Smith). 그렇게 모리세이에게 구원은 조니 마를 통해 다시 한번 주어졌다.


제목만 보자면,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영국 전역을 그의 인기로 물들일 정도로 폭발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던 모리세이의 성취담을 보여줄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는 이가 오히려 탄식할 정도로 모리세이의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그가 눈 앞에서 놓쳐버렸던 것, 소중한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순간, 있는 힘껏 손 뻗지만 끝내 도달할 수 없던 생의 한계같은 것들 말이다. 유명인사를 보여주는 영화의 이런 초점은 외려 관객에게 소소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역시 한계 속에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범인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 역시 생을 향해 덮쳐오는 위기에 허우적 댈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까. 


영화 마지막, 조니 마는 은은하게 아르페지오 연주를 한다. 한 손가락마다 한 현을 움직여 세상에 나온 음들은 잠깐 불안에 떨다가 금방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더한다. 카메라는 모리세이의 지난한 삶의 자리들을 비춘다. 조니 마의 따뜻한 음들은 하나씩 그 공간을 은은하게 채워 위무한다. 희망은 언제나 서늘한 아픔을 토양삼아 솟아나기 마련이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잉글랜드는 나의 것’이라던 그의 세계는 여전히 맨체스터에 머물러있을 지라도, 여전히 그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아플지라도(Still Ill - The Smith),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아이일지라도(The Worlds Loneliest Man - Vince Eager),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가장 멋진 사람이 있어요.(This Charming Man - Th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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