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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Jul 12. 2018

어렵지만 인정할 때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줄리엣 비노쉬의 폭발하는 연기부터 말해야 할까. 실제로 비서를 해본 사람처럼 연기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찬사를 보내야 할까. 스위스 실스마리아의 경탄할만한 풍광에 대해 언급해야 할까.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대한 글을 쓰며, 장점부터 먼저 나열하고 싶지만 이 영화의 특징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영화의 줄거리는 어렵지 않다.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이라는 비서를 둔 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데뷔한지 벌써 20년이 넘은 중견 배우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던 중 갑작스럽게 마리아의 오랜 은사였던 빌렘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황망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리아는 예정된 시상식을 잘 마무리한다. 이후 취리히 시장의 초대로 시청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한 마리아는 그곳에서 연극연출을 한다는 클라우스의 제안을 받게 된다. 빌렘의 초기작이었던 <말로야 스네이크>를 리메이크할 예정인데, 그 연극에 헬레나로 출연해 달라고. 마리아는 단칼에 거절한다. 20년 전, 시그리드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마리아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금까지 시그리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헬레나는 시그리드의 상대역으로서, 시그리드로부터 버림받은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녀가 제안을 거절한 또다른 이유는 헬레나라는 캐릭터를 비참한 인생이라고 여겨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라우스의 집요한 제안에 결국 마리아는 승낙하고, 극 연습을 위해 실스마리아로 간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비서 발렌틴과 함께 대사 연습을 한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다분히 연극적인 형식을 따른다. 연극이 일반적으로 3막으로 구성된다면, 이 영화 역시 1부와 2부,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시퀀스를 암전으로 마무리한다는 점은 연극에서의 막의 단절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이제 막 인기를 얻게된 조앤(클로이 모레츠)과 마리아, 발렌틴은 함께 식사를 한다. 조앤은 말한다. “선배님의 갈매기 연극도 보러 갔어요. 최고의 니나 연기였어요”. 조앤이 언급한 연극 <갈매기>는 이 영화에서 등장한 영화와 연극 - <말로야 스네이크>, <위기의 딱정벌레> - 과는 달리 유일하게 실재하는 연극인데, 그래서 연극 <갈매기>가 언급되는 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이 영화는 연극 <갈매기>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러시아의 대문호인 안톤 체홉의 <갈매기>에서는 사랑에 빠진 인물들이 결국 사랑에 실패하는 이야기다. 마리아가 맡았다는 <갈매기>에서의 니나는 남자친구를 거절하고 남자친구의 엄마, 그녀의 남자친구인 뜨레고린과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오래 흘러, 남자친구였던 뜨레플레프가 니나에게 찾아오지만, 여전히 니나는 그를 거절한다. 가여운 뜨레플레프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갈매기>에서 니나와 뜨레고린 사이의 나이 차, 그리고 사랑에 실패한 사람의 자살이라는 설정은 다분히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시그리드와 헬레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사실 이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도 볼 수 있는 인물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도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안톤 체홉의 분위기를 영화적으로 바꾸어 드러낸다. 제목 역시 안톤 체홉적인 작법이다. 체홉의 작품인 <갈매기>, <벚꽃 동산>, <세 자매> 등 제목은 극 전체를 상징하는 장소이자, 매개이다. ‘실스마리아의 구름’이라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실스마리아의 구름은 악천후가 오기 전 전조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마리아는 그 광경을 직접 대면한다. 그러니까, 그 구름은 중년 배우의 위기를 앞둔 마리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말로야 고개를 휘감는 실스마리아의 구름처럼 그녀는 자신을 향해 휘감아오는 세월의 위기를 애써 유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운명을 거절할 수 없다. 어쨌든 시그리드는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 헬레나가 될 테니까.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흘러가는 시간에서 비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우리는 세월 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걸까. 그러나 시간의 한계 앞에서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치지만 끝내 버틸 수 없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은 숭고해지는 게 아닐까. 어렵지만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헬레나에게 자유로움이 찾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헬레나 역을 맡은 마리아는 시그리드 역을 맡은 조앤에게 연기 지시를 한다. 그러나 조앤은 선배의 가르침을 거절한다. 기분나쁠 수도 있을텐데, 조앤의 거절에 의연하게 수긍하는 마리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내 잘못된 버릇이 나왔어". 지금껏 시그리드와 니나로 살았던 마리아는 이제 또 다른 역할인 헬레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그리고, 연극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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