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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Aug 09. 2018

사랑을 증명하는 것들

영화 <빅 식>  (The Big  Sick, 2017)

❁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의 리뷰입니다.




"사랑을 찾은 인간과 기쁨을 찾은 인간이 동시에 될 수는 없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찾은 인간과 기쁨을 찾은 인간이 동시에 될 수는 없다”. 사랑하기에 행복하다는 말이 가능하다면, 동시에 사랑하기에 고통스럽다 역시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그 진폭이 큰만큼 그 상흔 역시 깊고 짙게 남긴다. 에밀리(조 카잔)가 쿠마일의 비밀스러운 박스(결혼 상대자의 여자 사진이 든 박스)를 발견하고 그렇게 마음을 아파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에밀리가 (영화의 제목대로) ‘큰 아픔’(<Big Sick>)을 겪은 것도 맥락상 쿠마일과의 사랑이 깨어진 직후부터라는 점은 사랑의 이런 속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게 아닐까. 



영화 <빅 식>



쿠마일 난지아니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5세다. 그의 조국은 파키스탄이다. 쿠마일은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한다. 그는 조국을 특별히 사랑하는데, 자신의 코미디 쇼에 늘 파키스탄에 대한 특징들을 담아내 적극적으로 개그 소재로 활용한다. 그중 파키스탄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크리켓을 많이 한다는 것과 둘째 기도를 정해진 시간마다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정해준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지극히 우스꽝스럽고 비상식적인 규칙이지만, 파키스탄에서 실제로 지켜지는 규칙이라는 두 가지의 모순된 불일치가 코미디 소재라는 건 정말이지 그 자체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두 문화의 불일치에서 오는 미국인들의 웃음을 노리고 코미디쇼를 하는 쿠마일은 조국에 대해 어떤 마음이 있을 것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추측된다.


영화 <빅식>은 실제 쿠마일의 삶을 다룬 영화다. 그리고 실제로 쿠마일 난지아니와 그의 아내 에밀리 V. 고든이 직접 각본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리얼리티가 더욱 증폭된다. 그것도 모자라 남자 배우는 아예 쿠마일 본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모든 갈등 상황마다 쿠마일의 감정이 세밀하고 깊이 있게 드러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영화적 요소들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이를테면, 가족 식사 자리에 엄마가 섭외한 파키스탄 여자들이 우연을 가장하며 쿠마일의 집으로 오는 상황.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여자들은 올 때마다 “지나가다가 잠깐 들렸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것은 짜인 틀에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한 영화적 방법이다. 이런 유머들이 곳곳에 포진되어있는 영화 <빅식>은 보는 내내 관객들을 유쾌하게 하고 즐겁게 만든다.


영화 <빅 식>



사랑을 증명하는 것들

결핍이 욕망을 만든다. 그리고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 이 두 가지 문장은 사랑의 속성을 의미할 때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 아닐까. 결국 사랑의 불타는 동력은 결핍된 사랑의 서늘한 순간들로부터 비롯된 것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결핍되어 가슴 아픈 그곳으로 서늘한 냉기가 불어올 지라도, 결국 상대방의 부재로 상대방의 존재를 더욱 욕망하게 되는 것. 이것은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감정일 것이다. 쿠마일에게 그것은 에밀리와의 연애를 반대하는 부모님의 반대일 것이고, 에밀리에게는 쿠마일의 배신(자신과의 연애를 부모님께 밝히지 않고, 계속 정략결혼 상대자를 만나는 쿠마일의 모습) 일 것이다. 쿠마일의 은밀한 박스를 발견하고 이별을 통보한 에밀리, 병명도 확실하지 않은 병에 희귀병에 걸려 생사를 두고 의식 없이 사투하던 에밀리를 옆에서 간호하던 쿠마일. 무엇보다 에밀리의 입원은 쿠마일에게 에밀리의 부재를 통해 더욱 절실하게 에밀리의 존재를 드러나게 한 사건일 것이다. 모름지기 사랑의 성숙은 사랑의 권태로움을 거쳐 사랑의 결핍을 지나온 뒤에야 더욱 절실해지고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영화 <빅 식>



에밀리의 부모님을 모시고 에밀리의 집으로 갔을 때, 쿠마일이 발견했던 에밀리의 옷과 사진들. 그곳에서 쿠마일은 에밀리와 함께했던 감미로운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 옷을 입었던 에밀리, 그 목도리를 했던 에밀리. 그리고 그 장소에서 함께 있었던 에밀리.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순간들. 결국 그 둘의 사랑을 증명해주는 것은 거창한 사랑의 스토리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너무나 생생했던 사랑의 ‘순간들’이다. 종종 사랑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연인들은 사랑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낸다. 둘이 어떤 아픔을 겪었든 간에, 그 둘 사이에 어떤 상처가 있든 간에, 그 모든 아픔들을 모조리 덮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 순간들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결코 얕지 않은 밤인데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분다. 어떤 행인은 이어폰을 꼽고 고개를 숙이며 걷는다. 반팔 차림의 여자는 걸음을 빨리 하면서 더운지 손으로 연신 얼굴에 부채질을 한다. 그 옆에는 나무들이 뜨거운 더위에도 의연히 서있다. 나 역시 어떤 순간들이 기억되려는 찰나, 애써 그 기억들을 밀어내 버리려 노력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영화 <빅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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