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 바쁘던 날이었다. 보통 여섯 시면 끝났는데, 큰일이 있어 저녁 여덟 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나는 짐 정리를 막 마치고 일어서던 참이었다. 엄마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식아, 생일 축하한다. 오늘 축하 많이 받았제?
...
정식아, 외할머니... 오늘내일하신단다. 지금 보니... 아무것도 안 드시려고 하시네.
아직 오늘 밤은 괜찮을 것 같은데, 내일 새벽 정도에... 연락 줄 테니 올 준비해서 와"
차마 완성하지 못한 문장에 짙게 배인 엄마의 마음을, 나는 잊을 수 있을까.
엄마는 그 말을 하신 뒤, 내가 쉬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이어서 덧붙이셨다.
"정식아,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가 오늘 새끼를 낳았는데, 예배시간에... 다섯 마리를 낳았어. 근데 지금 와보니 새끼 두 마리가 죽었어. 깔려 죽은 건지, 물려 죽은 건지... 그래 아무튼 전화하면 내려와."
엄마는 죽은 두 마리의 강아지에서 무엇을 발견하신 걸까. 강아지의 죽음을 왜 그렇게 긴 문장으로, 숨을 연신 내쉬면서 말씀하신 걸까. 그보다 위급한 일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문장 배열도 맞지 않고, 순서도 뒤죽박죽일 정도로 강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급하게 전하기 위해 전화한 사람처럼, 엄마는 왜 그렇게 공을 들여서 설명하신 걸까.
전화를 끊은 후 얼마간 착잡한 마음이 들어, '오늘 저녁은 함께 생일파티해야지!'라는 교역자들의 서름서름한 요청에 대해 거절을 할까, 나는 고민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과 말투가 나보다 더 설렌 듯하여 나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함께 카페에 가서, 조그만 조각 케잌으로 그럭저럭 파티 분위기를 내어 그들은 축하해줬다. 나를 축하해주어야 한다는 그들의 고집이 고마웠고, 그들에게 어려있는 환한 표정까지 무척 고마웠던 순간이다. 나는 애써 표정을 좋게 하느라 노력했는데, 그들의 표정은 나보다 분명 더 진실되었다.
엄마의 전화가 다시 걸려온 건, 카페에서 일어서서 교역자들과 함께 한강공원에 막 도착했을 때다.
"정식아, 외할머니 돌아가셨단다. 오 분 전에.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밝는대로 내려와. 여기서 지낼 준비하고."
아까보다 훨씬 얼어붙은 목소리로 엄마는 말씀하셨다. 아마 엄마도 방금 소식을 들으셨나 보다.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에 다소 놀랐지만, 아마도 억누르고 계실 것이다. 이제껏 엄마는 그래오셨으니.
순간 나는,
"엄마, 괜찮아?"
라고 말이 나오려던 것을 목구멍으로 애써 삼키고
"네, 엄마. 밝는 대로 얼른 갈게요."
라고 대답했다.
난 그날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축하를 받았는데, 그 순간 외할머니는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고 계셨구나. 그 사실이 괜시리 부끄러워져 들떠있던 마음은 다시 가라앉았다.
그 순간, 엄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죽은 두 마리의 강아지와 살아있는 세 마리의 새끼 강아지를 보며 엄마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사람들의 관심이 두려워 입에 물고 이리저리 옮기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만 죽여버린 자신의 새끼를 그저 혀로 핥고있는 또다른 부모를 보며, 그러니까 아들의 생일과 엄마의 죽음을 동시에 겪는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제부터 나의 생일은 외할머니의 기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의 넋이 스러지고.
누군가의 탄생을 기뻐하고, 애써 고개를 돌려 눈물을 삼켜야 하는, 그날.
그날 밤, 한강 수면에 잠긴 달과 야경은 이리저리 부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