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린넨천

가을과 밤을 닮은 어떤 것

by 이정식

린넨천




작년 9월 어느 날, 나는 한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은 영화 상영 외에도, 파스타와 피자 같은 레스토랑 음식을 만들고,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독특한 영화관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주로 맡은 일은 설거지를 하거나, 식기세척기 안에서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조리기구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제자리에 옮겨두는 일이었다.


그때 사용한 것이 린넨천이었다. 고동색 린넨천. 그 계절을 닮은.

그곳은 린넨천을 즐겨 활용하는 듯했다. 나 역시, 특별한 이유 없이 린넨천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건 특유의 보들보들한 촉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끔씩, 조리기구의 물기를 닦다가 자신의 몸까지 축축하게 젖어버린 린넨천이, 어쩐지 거리에서 홀딱 비를 맞은 강아지 같아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고 나서, 숭고하게 젖어버린 린넨천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깨끗하게 씻어서 잘 건조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린넨천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순교와 부활을 반복했다. 살아난 린넨천은 언제 축축해진 적이 있냐는 듯 새로 뽀송뽀송해진 얼굴이었다. 그것을 새로 진열할 조리기구 맨 아랫 바닥에 깔기도 하고, 영화관의 하루를 마감한 이후, 쌓은 그릇들 위로 밤새 먼지가 덮이지 않게 하기 위해 린넨천으로 덮어두기도 했다. 이상하게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그 광경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눈도 아직 다 뜨지 못한 어린 강아지가 어미 강아지의 품 속으로 잔뜩 몸을 웅크린 것처럼, 높이 쌓은 그릇들 모두 맨 위의 린넨천 품 아래로 안기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 그릇이 자신을 더럽힐 먼지와 오염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며, 겁먹은 채 눈만 껌벅이며 부모를 바라보는 연약한 눈길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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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떤 사람의 얼굴과 무척 닮아있다고 나는 느꼈다. 어떤 눈물도 넉넉하게 감싸 안아 줄 것 같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젖어들어가, 조금이라도 그 몸을 비틀면 간신히 감춰두었던 눈물이 온몸에서 와락 쏟아져 내릴 것처럼. 동시에, 그 아픔을 견딘 뒤 몰라 보게 환해져 어떤 아픔도 겪어본 적 없는 듯 깨끗한 웃음을 짓는 어린 아기처럼.


얼마 전, 추석을 맞아 고향 구미에 내려가 조카를 봤다. 조카를 보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감미로운 시간이다. 잠결에 눈을 뜨면, 어느새 조카는 내 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를 작은 몸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뒤뚱뒤뚱 걸어 내 옆에 와 몸을 뉘인다. 내가 손을 뻗어 작은 몸을 간지럽히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 물방울 같은 웃음소리, 내 볼에 닿는 얼굴의 감촉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슬퍼한다. 무심코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그 어린 생명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일그러지는 인상을. 절대적으로 연약한 상태, 무력한 상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상태, 그래서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그 사람의 상태를.



고동색 린넨천. 그 가을의 나는, 때로 보드라운 감촉을 사랑했다.

이번 가을의 나는, 아직 그 린넨천을 만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