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식 Nov 28. 2018

전쟁이 아니라, 재난

영화 <저니스 엔드>


여기에는 전쟁영화만의 장르적 쾌감이 없다. 총포탄이 빗발치거나, 유혈이 낭자하지도 않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벌여졌던 전쟁을 다루면서도, 전투 장면은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외피를 덮어쓰면서 그 내피에는 (전쟁 한가운데 있는) 인간으로 가득 차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저니스 엔드>



어떤 의미로, 이 영화는 전쟁 영화라기보다 재난 영화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는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묘사보다, 전쟁이라는 구심력에 온 존재형식이 빨려 들어가는 인간이 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난이 그 인간을 어떤 식으로 무너뜨리는지를 영화는 치밀하게 묘사해나간다. 아무리 강인하거나 의연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 결국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같은 것들 말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맞닥뜨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강인함보다 나약함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역설적으로 그 모습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울 딥 감독의 영화 <저니스 엔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북부에서 독일군과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연합군의 상황을 다룬다. 기관총, 대포, 전차 같은 현대식 무기는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갖췄고,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군대는 땅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서로 대치했다. 참호 속에 웅크리고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전선은 고정되었고 전쟁은 장기전으로 빠져들었다. 무모한 돌격 명령이 내려지면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엄청난 수의 희생자가 생겼다. 그런 소모전 끝에 전선은 겨우 몇백 미터 옮겨질 수 있을 뿐이었다. 



영화 <저니스 엔드>



<저니스 엔드>에서는 독일군과 연합군이 서로 참호 속에 웅크린 채로 1개월 6일을 버티는 중, 3월 18일부터 3월 21일까지의 마지막 나흘의 일을 다룬다.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기다리는 일 밖에 없었다. 상관의 공격 명령을, 적국의 공격을, 전투를, 포탄을, 그리고 묵묵한 죽음을. 영화 <저니스 엔드>에서 기습공격을 앞둔 병사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오랜 시간 동안 쇼트를 나눠서 보여주는 것은, 비극을 곧 마주할 사람의 무력감을 보여주기 위한 최적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건, 스탠호프 대위의 모습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저니스 엔드>는 스탠호프 대위에 깊숙하게 배인 무력감과 절망감을 다양한 쇼트를 통해 보여준다. 때로 스탠호프의 등 뒤에서 그의 짓눌린 어깨를 바라보며, 때로는 그의 얼굴 절반이 어둠에 가려져있는 모습으로, (오스본 중위의 죽음 이후) 그가 간신히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흔들리는 잔등 빛에 비춤으로써 그가 겪는 감정의 층위를 세밀하게 구분하며, 그의 감정 깊숙한 곳으로 그가 빠지듯 관객도 함께 내려들어갈 수 있도록 영화는 이끈다.



영화 <저니스 엔드>



“하지만 오스본처럼 견디는 것도 가치가 있어. 그냥 버티는 거야. 그런 괜찮은 사람들도 버티는 게 고작이야.” 전쟁이 두려워 자신을 본국으로 호송해달라고 요청하는 히버트에게 스탠호프 대위는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내내 의연하던 오스본 중위조차 잠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습 공격 시작까지, 3분을 앞둔 상황에서 독일군에 대해 재차 질문하는 롤리 소위에게 오스본 중위는 의도적으로 롤리 소위의 고향에 대해 묻는다. 아마도 그건, 두려움에 자꾸만 손이 떨리는 자신을 진정시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두려워할 롤리 소위를 잠시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배려였을 것이다. 비록 롤리 소위는 얼마 못가 두려움을 소화하지 못하고 구토하긴 했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단될 때, 비극은 더욱 강화된다. 기습공격 개시까지 다 태우지 못한 오스본 중위의 담배, 두려움을 버티려 잔을 비우지만 끝내 다 마시지 못한 스탠호프의 술병,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발생한 긴급상황때문에 다 먹지 못한 트로터의 저녁 식사, 그리고 미처 전하지 못한 롤리 소위의 할 말 같은 것말이다.



영화 <저니스 엔드>



“차라리 전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기분인 것 같아.” 간신히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디좁은 참호 속에서 그들이 끝내 기다렸던 것이 설령 그들의 숨통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죽음일지라도, 그들은 놀랍게도 자신의 운명을 고통에 바치며 시간을 무겁게 인내하고 있었다. 


포격이 시작되고, 빗발치는 총포탄 소리에 울렁이며, 시야가 흔들려 걸음조차 잘 걷지 못하는데,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오직 목숨, 진흙투성이 삶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 모든 숭고한 삶을 단번에, 완전히 앗아간다. 그러니, 전쟁은 인간에게 재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부감 쇼트로 그 재난의 결과를 보여주며 막을 내리는 영화는 관객에게 곡진하게 묻는다. 이 여정의 끝(Journey’s End)에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영화 <저니스 엔드>의 마지막 부감쇼트.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의 리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을, 평화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