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식 Nov 05. 2018

봄을, 평화를

영화 <1991, 봄>

2018년이라는 안온한 봄, 1991년이라는 혹독한 겨울. <1991, 봄>이라는 글귀가 못내 역설적으로 보였다. 그해 봄은 확실히 서늘하고 쌀쌀했다. 누군가는 ‘죽음의 망령이 떠돈다’고 하고, ‘이런 일들을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는 싸늘한 말로, 그 해의 비극을 더욱 강화했다.



영화 <1991, 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은 저물었지만, ‘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유사 군부독재라고 할 수 있는 노태우 정권이 탄생하게 되면서 전 국민적인 무력감과 절망감이 그해를 가득 메웠을 때, 국가는 다시 국민들의 거리 시위를 폭력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가폭력에 저항하여 자신의 몸을 죽음으로 던졌고, 그해 봄인 1991년 5월은 한 달 동안만 분신자살한 이들이 무려 11명에 이른다.(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1991, 봄>은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1991, 봄>은 국가 폭력에 분신자살로 저항했던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 조작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실형을 받은 강기훈 씨를 위시해 그해 국가폭력에 황망하게 스러졌던 이들의 넋을 정성스럽게 위무한다. 7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영화 <1991, 봄>은 강기훈 씨가 연주한 기타 곡명을 주제로 각 챕터를 구분한다. (‘기타를 위한 전주곡’, ‘아멜리아의 유서’, ‘성당’, ‘눈물’, ‘망각’, ‘사라방드’, ‘이별을 위한 전주곡’, ‘카바티나’) 권경원 감독은 이 영화를 음악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기훈 씨의 기타 연주를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소모하지 않고 영화 전체의 흐름에 스미게 했다. 



영화 <1991, 봄>


그 의도에 대해 감독은 인터뷰에서 “강기훈 선배는 1993년 억울한 옥살이에서 석방된 이후 2015년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매년 5월마다 이 사건을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도 매번 똑같은 질문, 혐오, 의심을 받고 계신다. 이제 본인 스스로 말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신다. 실제로도 이후에는 공적인 자리에서 특별한 말을 하신 적이 없다. 대신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설명만 덧붙일 뿐. 그래서 연주라는 언어로 강기훈 선배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선배의 선곡 자체가 말을 하고 있다고 믿고 그를 바탕으로 영화의 구성을 짰다”라고 말했다. 온몸을 눈물과 고통에 바치며 통과해온 세월을 하나의 현에 담아내는 듯, 한음 한음 떨리는 음들은 바닥을 스쳐 조심스럽게 세상으로 나와 온기를 더했다.



인생에서 한 페이지가 구겨지거나, 찢어지게 될 때, 어떤 사람은 책 전체를 버리기도 한다. 1987년 이한열 씨부터 1991년 김귀정 씨까지, 국가폭력에 황망하게 스러진 이들은 총 120명이 된다고 한다. 그중 어떤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그 선택으로 세상에 단 한 번의 강력한 외침을 쏟았다. 그 시기가 더욱 잔혹한 것은, 살아가는 사람들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는 것. 가장 고결한 삶이라는 가치가, 그저 산다는 이유만으로 수치가 되어버리는 시기였다. 그런 분에게 동료의 죽음을 조장했다는 ‘자살방조죄’라는 혐의를 덮어씌운다는 것은, 국가폭력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식일 것이다.



영화 <1991, 봄>


송소연 ‘진실의 힘’ 상임 이사의 말은 이 영화의 지향점을 곡진하게 표현하는 듯하다. ‘야만의 시간은 잊지 말자. 그러나 지금 남아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누리자’. 스러진 넋들을 정성껏 위무하는 것. 그때, 살아남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아직 마음의 짐을 잔뜩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부드러운 위로를, 2018년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가 이분들의 고결한 투쟁에 비롯되었음을 영화는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영화가 끝난 후, 한강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단편 소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 나오는 부분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k씨는 언제나 평화스러운 사람이었는데. 

나는 되물었다. 

제가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람이었어.   

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땐 제가 지금보다 말이 없었으니까, 단지 조용하니까 그렇게 보였던 것 아닐까요?

그런가. 하지만 지금도 k씨는 평화로워 보여.

아니요, 불가능해요. 이 세상에서 평화로워진다는 건.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 죽고.

나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뒤척이고 악몽을 꾸고.

내가 입을 다물었는데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이를 악물고 억울하다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간절하다고, 간절하다고 말하고.

누군가가 어두운 도로에 던져져 피흘리고.

누군가가 넋이 되어서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누군가의 몸이 무너지고. 말이 으스러지고. 비탄의 얼굴이 뭉개어지고.


하지만 평화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가 의자를 밀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한테는 언제나 그게 중요했어요.

...

이제 밝아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아직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마치 검푸른 허공에 멈춰 서려는 듯 느리게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우리의 눈과 눈이 만났다. 평화를.

- 한강,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삶은 평화롭지 않다. 

그럼에도, 평화를 위해 기꺼이 투쟁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에게, 삶의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나가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봄을. 그리고 평화를.

매거진의 이전글 에릭 로메르가 그려낸 겨울의 풍경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