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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식 Dec 04. 2018

솔직함보다 배려심

영화 <완벽한 타인>


이 영화를 연인 혹은 부부에게 꼭 보라고 추천하는 게 좋을까, 좋지 않을까. 또, 이 영화를 본 연인/부부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될까, 혹은 그 의심을 거두게 될까. 어떤 관계는 전자의 경우를, 또 어떤 관계는 후자의 경우를 겪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건, 상대방을 믿는 신뢰가 얼마나 돈독한 지에 달린 게 아니라, 진실이 때로는 추악할 수도 있다는 ‘진실의 역설’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



강원도 속초에서 함께 태어나 35년째 친구로 지내는 5명(순대를 제외하면 4명)은 부부동반 저녁식사 자리를 석호(조진웅)의 집에서 갖는다. 그러던 중, 석호의 아내 예진(김지수)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앞으로 2시간 동안, 각자의 핸드폰으로 오는 모든 연락(카톡, 통화, 메시지)을 공개하기로. 그러자 각자만의 숨겨왔던 진실들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어떤 관계는 균열이 일어나고, 어떤 관계는 파국에 이르기도 한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 중 사건이 모두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과 배우들의 대사 소화능력이 어느 영화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 막과 막 사이의 단절이 있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달’을 통해 막과 막을 구분한다. (영화에서 캐릭터가 다 함께 달을 보는 쇼트는 총 3번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 속초에서 보았던 달,  석호의 집에서 식사를 중단하고 모두 함께 테라스에서 보았던 달, 마지막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나타났던 개기월식의 달이 각 막을 구분한다.) 인물들의 동선은 자유롭게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정교하게 짜여 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만이 아니다. 배우들을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갈등이 발생한 캐릭터는 결코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지 않는다. 한쪽은 사선을, 다른 한쪽은 그 상대방을 바라보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카메라는 서로의 시선을 엇갈리게 세팅한다. 이 점은 수많은 불신과 의심으로 생겨버린 관계의 소통의 불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대목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 - 각 인물의 시선



특히 인상적인 것은 셔츠에 와인이 튀어버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 석호와 예진을 담은 쇼트다.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이 쇼트에서, 석호는 불 꺼진 방 어둠 안에서 옆으로 서있다. 예진은 화장실에서 옷을 물에 담그며 석호와 대화한다. ‘언제부터 상담받고 있었어?’ 그 순간 예진이 던진 질문엔, 왜 자신에게 먼저 그 일을 털어놓지 않았냐는 서늘한 실망감과 함께, 약간의 불신이 함께 섞여있었을 것이다. 이때, 예진은 화면 밖에 있다. 이어, 석호는 “혹시라도 이혼하게 됐을 때, 그래도 내가 노력은 했구나라고 생각하려고”라며 따뜻하게 말한다. 이때, 카메라는 서서히 이동하며, 화면 밖에 있던 예진을 석호와 함께 한 프레임 안에 담는다. 그리고 석호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환한 불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드디어 예진의 얼굴을 마주한다. 즉, 이 씬(Scene)은 끊어진 소통의 불능과 간신히 다시 이어진 소통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둘이 온전히 연결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 피는 총 2차례 등장하는데, 그것은 모두 상대의 비밀을 알게 됐거나, 혹은 알게 됐을 때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먼저, 태수의 비밀인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사실, 영배의 비밀이긴 하다), 그의 아내인 수현은 와인잔을 세게 부딪혀 깨뜨린다. 그때 수현은 깨진 유리에 손가락이 베어 피가 흐른다. 이때의 피는 단순히 유리조각에 베인 상처만이 아니라, 태수에게서 베인 마음의 상처이기도 하다. 또, 피는 석호의 옷에서도 발견된다. 와인으로 얼룩진 셔츠를 물에 담갔을 때, 그때 투명한 물로 붉은 불이 스민다. 그 붉은 물은 (엄밀히 말해) 와인이지만, (사실) 석호가 예진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로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그건 석호, 가슴(마음)에서 흐르던 피였을 것이다.(이 점에서 석호는 예진과 준모 사이의 불륜을 알고 있던 것처럼 보인다. 그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내내 젠틀하던 석호가, 혼자 있을 때 그 답지 않게 유난히 게걸스럽게 티라미수 케익을 먹는 장면은 바로 그 점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 <완벽한 타인>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거짓 없이 진실한 사람은 누굴까. 남편 하나만을 오랜 시간 사랑했던 수현(염정아)일까. 비릿한 남자관계없이 온 마음 다해 준모만을 사랑했던 세경일까. 그러나, 사실 이 둘도 진실하지만은 않았다. 세경은 준모의 불륜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으며, 수현의 사랑 이면에는 태수에 대한 깔깔한 죄책감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진실하지 않고, 모두 각자만의 비밀을 갖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저마다 숨겨두었던 추악한 비밀들이 드러나면서 모든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반부에 이르면(개기월식이 지나가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비밀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나 만들었던 지옥 같던 세상이 사실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이었으니 이제 조금 안심해도 된다고 영화는 완급 조절을 한다. 이윽고, 엔딩에 이르면, 세 가지 문장이 화면에 잠시 떠올랐다 사라진다. “누구나 세 가지 삶이 있다. 공적인 삶 하나, 개인적인 삶 둘, 비밀의 삶 셋”. 그리고 하늘을 비추던 카메라는 시선을 돌려 서울의 야경을 비춘다. 결국, 이 영화에 나온 캐릭터들의 삶이 세 겹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인 당신네들의 삶의 단면도가 아니냐고.


“내가 두 시간 동안 게이로 있어봤잖아? 못할 짓이더라.” 이렇게 태수는 말하지만, 사실 두 시간 동안 다른 존재로 살아본 것은 (태수만이 아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였다. 영화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해놓고, 관객들에게 두 가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하나는, “공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으로 이루어진 현실의 세계, 그리고 하나는 “비밀의 삶”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 이중 가장 진실한 삶은 단연 속내까지 고스란히 드러내는 ‘비밀의 삶’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진실된 삶을 살라고 말하는 영화일까.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진실한 세계를 아름답게 채색하지 않는다.



영화 <완벽한 타인>



두껍고 견고한 거짓으로 자신의 비밀을 꽁꽁 감싸 놓은 사회도 끔찍하지만, 모두가 속엣말과 진심을 진실이라는 덕목으로 여과 없이 드러내는 사회 역시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가상의 세계는 진실로 이루어졌지만 지옥에 가깝고, 약간의 가식과 거짓으로 이루어진 현실의 세계가 외려 지옥보다는 낫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진실이라는 가치야말로 최우선의 덕목이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진실을 말할 때, 마주하게 될 추악한 인간성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끔찍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사실, 예절이라는 것은 타인을 위한 배려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순화된 거짓말(거짓 행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거짓 진실’(위선)이라며 없어져버린다면, 그래서 성별과 지역과 사람에 대한 끔찍한 편견을 최악의 표현으로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칭송받는다면, 그 세계는 얼마나 우악스러움으로 가득 찰까.



영화 <완벽한 타인>



영화의 초반 잠깐 나왔다가, 러닝타임 내내 괄호 쳐진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순대’다. 그가 동창이면서도 이 모임에 빠지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친구에서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린 셈이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맺는 관계를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지레 허망해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는 관계를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방식으로 축조해왔으며, 오히려 그것을 무너뜨린다면 훨씬 더 끔찍한 세계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솔직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배려심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진실보다 거짓과 위선에 좀 더 가깝다 해도 말이다. 그런다고 해서, 양치기 소년처럼 모두에게서 미움을 받는다거나,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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