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풍성해지는
잠깐 바람에 흔들리며 위태했던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착륙했다. 오전 10시 30분경, 나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5일간, 내가 있던 곳은 어디였나. 그곳에 나는 실제로 존재했던 걸까. 협재의 해변은 여전히 푸르고, 애월의 낙조는 지금도 의연히 붉게 물들어 있을까. 신창의 수많은 풍차들은 가느다란 팔로 바람을 힘차게 가르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본 것은 환영이 아니라 실제였던가. 나는 정말 그 5일의 시간에 존재했던 걸까.
시간은 바람과 같아서, 머물렀던 자리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흘러가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무망하게 바람이 머무른 자리에서 흔적을 찾으려 했다. 이 글은 그 노력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낙조를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던 여행의 현재는,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과거가 되어 사진 속 평면에 갇힌다. 감각은 기술이 대신 담아주지만, 감정을 담는 건 인간의 몫이다. 앙상한 뼈대 같은 기억에 감정의 살을 붙이는 건, 그 감정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오래 되풀이하는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사실,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터 위에 서있는 인간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또 때로는 다급히 현재의 물결에 휩쓸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가끔 급류를 만나거나, 물이 범람하여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한번 뒤를 돌아보기를. 제법 살이 붙어 두툼해진 기억을 보며, 조금 안도할 수 있기를.
(2018.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