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교회 성가대 연습 시간이었다. 잠깐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각자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H.O.T의 노래가 너무 좋다고 누군가가 말하면, 신화 오빠들의 멋진 춤을 봤냐는 반박이 금세 나왔고, 신나는 건 젝스키스 노래라는 말에, 가수는 뭐니 뭐니 해도 노래실력이 되는 GOD라는, 당시 우리로서는 가장 흥미진진하면서도, ‘우리 오빠’의 자존심이 걸려 비장한, 여느 또래 아이들의 평범한 대화였다.
나는 네 그룹 중 GOD를 가장 좋아했다. 그렇다고 무척 좋아하진 않았다. 좋아한 이유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그룹보다 어딘가가 더 친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호영’을 좋아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웃음이 선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에 비해, 신화 멤버들의 근육질 몸은 어딘가 불편했다. 그래도 좋아 보이는 멤버는 있었다.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선해 보이는 ‘신혜성’ 말이다. 비슷한 이유로 H.O.T에서는 ‘강타’를 좋아했다. 나는 그런 이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의 이미지는 비슷한 ‘헤어 스타일’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되는 5대 5 가르마, 앞머리가 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스포츠머리’가 유일한 헤어스타일인 줄로만 알았던 당시의 나로서는, 그 머리가 하나의 꿈처럼 다가와, 언젠가 꼭 나도 저런 머리를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만들었다. (성가대 아이들 앞에서 ‘난 커서 강타 머리를 할 거야’라고 했다가 엄청난 비웃음을 당했지만, 당시 나는 그럴지라도 포기하진 않겠다는 어떤 비장함까지 있었다)
그러니까, ‘강타 머리’는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와 동일했다. 남자들이 부러워하고, 여자들이 선망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자격 같은 것으로. 그러니 내게 긴 머리는 꿈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머리 길이 검사를 할 때마다, 나는 일제강점기 시절 선포된 단발령에 저항하는 독립투사 같은 결연함으로 ‘두발 자유화’를 (속으로) 외쳤고, 다른 학생 동지의 머리카락이 선생님의 폭력적인 바리깡에 밀려버렸다면, 그와 함께 ‘두발독립만세’의 함성을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스무 살.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한 내게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두발 독립(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인)이 찾아왔다.(만세!) 미용실에 몇 달을 가지 않은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길지 않았다. 금방 교회 사역을 시작한 나는, 단정한 머리를 원하던 교회의 뜻에 맞춰야 했으므로 별 수없이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다. 내가 마음껏 머리를 기를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서른한 살, 교회 사역을 그만둔 때였다.
머리카락을 기른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드디어 앞머리는 인중까지 내려왔다. 정수리 부근의 머리는 귀 밑까지 내려왔다. 이대로 매직을 하면 단발머리가 될 정도였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강타 머리’에 가까이 간 것이다.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마주 본 거울에는 흡사 단발머리 돼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건 아니야.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절로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2019년 5월 2일 저녁 8시 15분경, ‘데이 바이 데이’라는 미용실에서, 길고 길었던 ‘강타 머리’의 꿈을 기꺼이 싹둑 잘랐다.
내 이목구비가 긴 장발머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머리를 기르며 거울을 볼 때마다 이건, ‘부조리한 얼굴이잖아’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여성들은 단정하고 깔끔한 머리를 좋아한다는 것도 상식처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긴 장발의 ‘강타 머리’를 하고 싶던 걸까.
글쎄, 모르겠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머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더 멋있거나, 깔끔하게 보이려는 욕망 같은 것과 상관없이, 어린 시절부터 가져왔던 나만의 소망을 이루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숨겨둔 무의식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젠가 다시 시도해도 될까. (사실 살이 좀 더 빠지면, 결혼하기 전에 한 번 더 시도해볼 생각도 있다) 눈 앞에 두고 실패한 ‘강타 머리’의 꿈을. 내 어린 시절의 소망을. 부디, 그때 내 머리를 보고 너무 비웃기는 말아주시기를.
부기. 그날 미용실에서 짧게 자른 머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 ‘강타 머리’의 꿈을 지금 접은 것은, 두고두고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중이다. (20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