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빠도 같았던 것

by 이정식

나도, 아빠도 같았던 것




지난 주말 동안 부모님이 계신 구미에 다녀왔다. 어버이날 겸, 지호도 볼 겸 해서였다. 이번에도 지호는 무척 자라나 있었다. 내 기억의 아이는 언제나 조그만 모습이었는데, 훌쩍 커버린 현실의 지호를 조금 부정하고 싶었다. 다행히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귀엽게 보였다. 우리 가정으로 지호가 온 날부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아이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번에는 다시 부모님 생각이 더 났다. 언제나 구미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지호 생각에 산뜻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부모님 생각에 약간 씁쓸하다. 그래서 오늘은 지호 대신, 부모님 이야기를 해볼까.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무렵, 구미에서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분은 엄마였다. 차를 발견하고 문을 열자마자, 엄마는 말했다. “차 안에서 쪄 죽는 줄 알았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지만, 내리쬐는 햇빛을 식히는데 실패했나 보다. 운전하며 엄마는 내게 물었다. “보자, 살이 좀 빠졌나. 그대론가.” “좀 빠진 것 같지 않아?” 최대한 배를 집어넣으며 나는 말했다.


집으로 오는 동안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중에는 내가 동의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럴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령 지호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얼마나 순한 아이인지, 혹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쌀을 보내준다고 마구 모은 탓에, 쌀 가격이 폭등해버렸다는 지 등. 다방면의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엄마의 끝은 항상 같았다. 그나저나 푹푹 찐다, 쪄.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 정말 덥다고 엄마의 의견을 거들었다.


집에 도착하면서 엄마는 말했다. 너 혼자 살면서 고기 잘 못 먹제?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려다가, 나는 으응하며 얼버무렸다. 고기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 점심에 갈비 먹으러 갈까? 또다시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아빠와 나보다 체구가 작은 엄마는 대신 우리보다 손이 컸다. 셋이서 먹는 돼지갈비에, 5인분에 이어 3인분까지 추가로 주문할 정도니. 아빠와 나는 많이 먹어서 더 추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말했지만, 엄마는 꿋꿋했다. 마치 다시는 고기 먹을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식사처럼. 어떻게 다 먹나 했는데, 결국 다 먹고 냉면까지 뚝딱 비웠다. 이번에도 엄마의 말이 옳았다.



산동 집.jpg 한창 공사중이던 2017년의 집



집에 가니 못 보던 새 식구가 생겼다. 이틀 전, 아빠가 선산시장에서 사신 강아지였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몸도 작은 데다가, 사람을 잘 따르는 모습이 지호 같아서 귀여웠다. 이름은 쫄빵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애) 이름이 저게 뭐고’라며 아빠의 작명 센스를 핀잔했지만, 아빠는 ‘왜, 쫄빵이가 뭐 어떤데’라고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아빠는 마당으로 내려갈 때마다, ‘쫄빵아’라고 살갑게 이름을 불렀다. 끼니때가 되면, 잊지 않고 쫄빵이의 몫을 챙겨주는 것도 아빠의 몫이었다. 목덜미가 간지러운지, 쫄빵이는 되는대로 한쪽 다리를 들어 목을 긁으려 했지만 다리가 짧아서 닿지 않는 걸 아빠가 대신 긁어주었다. “목줄 때문에 얘가 자꾸 간지러울 거야.” 그때마다 쫄빵이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긁어주는 아빠와 누워있는 쫄빵이의 표정이 같았다. 형언할 수 없이 잠잠한 평안 같은.


이렇게까지 아빠가 강아지를 좋아했나, 나는 의문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개와 친했다. 아직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어슬렁 다니던 다섯 마리의 개들을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개를 집 지키는 보안관 혹은 식용 정도로 생각하고 키웠지만, 아빠는 쫄빵이를 그렇게 키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쫄빵이도 그 사실을 아는 것처럼 편하게 누워서 아빠의 손길을 느꼈다.


그날 저녁, 우리 셋은 함께 1층 교회당을 청소했다. 내가 바닥을 청소기로 밀면, 엄마는 의자를 닦고, 아빠는 교회 외부를 쓸었다. 셋 중에 내가 가장 일찍 끝났고, 뒤이어 아빠도 끝났지만 엄마는 여전히 꼼꼼하게 의자를 닦았다. 나는 엄마가 쥔 걸레를 뺏어서 남은 의자와 바닥을 닦았다. 내내 몸을 구부리며 청소한 탓에 허리가 조금 쑤셨지만, 내심 통증이 곧 효도의 상징처럼 느껴져서 뿌듯하기도 했다. 청소가 끝나고 엄마는 말했다. “아들 덕분에 청소 금방 끝났다.” 이번에는 덥다고 하지 않으셔서 다행이었다.


그날의 마지막 일정은 마트에서 장 보는 일이었다. 내려올 때부터 효자 코스프레를 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터라, 짐을 들겠다고 따라나섰다. 그건, 부모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마 집에 남아서 책을 읽었다면, 서울에 올라와서 자주 그 선택을 후회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일일수록, 후회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했다. 그건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


마트에서 먹을 게 보일 때마다 엄마는 제안했다. ‘수박 먹을래?’ ‘핫도그 저거 맛있더라. 해줄까?’ ‘파인애플 먹자’. 괜히 돈 쓰는 것 같아, 집에 있는 음식 먹겠다고 대답해서 나는 엄마를 조금 서운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이스크림 선에서 우리는 합의를 봤다. 엄마와 나는 비비빅을, 아빠는 메로나를 들었다. 아이스크림은 조금 차가웠고, 많이 달콤했다. 행복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일일수록,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다음날 교회에서 예배드린 후, 아빠는 할머니와 나를 차로 태워주셨다. 홍삼드링크를 갖고 계신 할머니는 내게 건네며 말씀하셨다. “손자 전도사님, 나는 많이 먹으니까 이거 갖고 올라가세요.” 운전하시던 아빠가 말하셨다. “엄마, 그거 엄마 드시라고 드린 건데.” 할머니의 것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져서 받지 않고 싶었지만, 할머니를 서운하게 만드는 것은 더 어렵게 느껴졌으므로, 결국 받고 말았다. “할머니,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웃으며 손을 흔드셨다. 받긴 받았지만, 아무래도 나보다 부모님이 더 드시는 게 옳아보였다. 할머니를 먼저 내려드린 다음, 차 안에서 나는 말했다.


“아빠, 이거 가져가서 엄마랑 드세요. 나는 안 먹어도 돼요.”

“야, 할머니가 주신 걸, 내가 다시 받아서 우야겠노.”

“그래도, 내가 먹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차가 구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주신 홍삼드링크 박스를 차 안에 두고 내렸다. 아빠는 ‘잘 가라’라고 담백하게 인사하셨다. 결국 아빠가 할머니께 드린 선물은 돌고 돌아 본인에게로 가게 된 것. 아빠는 내 바람대로 엄마랑 같이 드셨을까. 아니면 할머니께 다시 조금이라도 드렸을까. 나는 이번에도 사랑받는 일에 유능했고, 사랑하는 일에 무능했다. 어쩔 수 없이 무능했던 것은, 아빠도 아빠의 엄마에 대해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와 아빠의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2019. 5. 13. 월)



산동 풍경.jpg 해가 남긴 붉은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