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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Dec 22. 2019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문학의 탄생과 인문정신의 숙명

신이 세계를 지배하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 가르침이 현실에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신의 이름으로 세계가 지배되었던 시대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서양의 중세시대이다. 사실 중세시대는 종교의 시대였다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신앙과 믿음이 강조된 시대임에도, 사랑과 은총으로 넘쳤던 시대라기보다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과 살육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중세시대의 또 다른 별명이 '암흑시대 Dark Age'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물론 중세 기독교가 남긴 근본적 상처가 사실 신 때문은 아니라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중세시대가 암흑으로 덮였던 진정한 이유는 신 때문이 아니라, 신의 말을 곡해해서 그것을 맹종했던 인간들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만약 전지전능하다고 전제된 신이란 관념이 없었다면, 타인의 생각을 부정하는 인간들의 맹종과 맹신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만이 전지전능한 신의 편에 서 있기에 진리를 알고 있다는 독선이 가능했던 것도,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들은 악의 편에, 혹은 잘해야 무지의 편에 서 있다는 편견이 가능했던 것 역시 절대자로서 신에 대한 관념과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1096년에서 시작되어 1279년에 끝난 십자군 crusades 전쟁을 보라. 이것만큼 바로 종교가 한 사회를 철저하게 지배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폭력적 메커니즘은 단지 중세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심지어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점점 더 종교가 지닌 반인문주의적 독선과 그로부터 발생한 폭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Renaissance 운동은 바로 암흑시대에 빛을 가져오는 서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글자 그대로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데, 다시 태어난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었다. 마침내 신과 그것의 본성을 다루는 신학 대신, 인간다움 Humanity과 그것을 숙고하는 인문학 the humanities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이 중세시대 기독교의 세계관을 뚫고 새롭게 부활한 셈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서양 근대사회의 인문학은 인간을 넘어서는 일체의 초월적 가치들에 대해 일정 정도 회의적인 자세와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 그 초월적 가치가 종교이든, 정치권력이든, 아니면 자연의 힘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만약 지금도 인문학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인문학이 인간의 편에 서겠다는 이런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만약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권위에 종속된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살아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도입된 서양 문명 중 좋은 점 한 가지 정도는 있었던 셈이다. 서양의 화려한 물질문명과 함께 인간을 존중하는 인문학 정신도 동시에 유입되었으니 말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폭력적으로 우리 땅에 들어온 자본주의, 제국주의, 물질문명 내부에는 그것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인문학 정신도 함께 함축되어 있었다는 것. 이것만큼 중요했던 역사의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인문정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는 불국토 佛國土를 꿈꾸었던 원효 元曉 (617~686)의 불교도 있었고, 자신이 바로 하늘처럼 존귀한 존재라고 선언했던 최제우 崔濟愚 (1824~1864)동학 東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진정한 인문정신을 피력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바로 이런 때 인간의 자유와 연대를 강조하는 서양 인문정신이 들어왔으니, 그야말론 백만 원군에 다름 아닌 셈이었다.


인문학적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일체의 초월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삶에서 마주치는 타자와 관계하려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인문학은 어떤 외적인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자유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적 정신의 소유자는 타자를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고 반대로 타자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타자가 나에게 건네주는 표현을 통해 타자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휴머니티 humanity'라는 말의 번역어이지만 '인문人文'이란 표현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말은 사람이 드러내는 문양, 혹은 무늬라는 의미이다. 나도 사람이고 내가 만나는 타인도 사람이다. 그러니 인문에는 타인의 표현을 읽어내는 동시에 자신의 속내도 표현한다는 이중적 의미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인문학 공부는 타인의 표현을 통해 그의 속내를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평소에 많은 문학, 철학,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어느 작가, 어느 철학가, 어느 예술가의 고유한 속앓이와 울분을 공유하는 연습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런 연습은 모두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고, 나아가 앞으로 마주칠 사람들의 속내를 읽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해서 타자의 속내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인문학은 나와 타자 사이의 행복한 관계를 지향하는 세계를 꿈꾼다. 그래서 타자의 표현을 읽을 수 있는 인문학적 감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나의 삶과 정서를 타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표현할 수 있는 인문학적 표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의 표현을 곡해하여 그와 불행한 관계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속내를 잘못 표현하여 타자로 하여금 오해에 빠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잘못으로 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내 자신의 잘못으로 그런 비극이 초래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라캉의 ≪세미나 Le Seminar≫ 17권 ≪정신분석의 다른 측면 L'envers de la psychanalyse≫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자신의 삶과는 항상 불일치한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 숙명적인 괴리나 간극을 넘어서야만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실제 삶을 생각으로 명료하게 떠올리고 나아가 적절한 표현으로 타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런 소명은 단순히 정신분석학에 국한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 전체의 소명이자 운명이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의 표현을 능숙하게 읽어내는 인문학 공부의 목적은 오직 나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이 지향하는 궁극적 인간형은 독자나 관람객이 아니라 저자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근대철학은 르네상스가 새롭게 부각시킨 인문학적 정신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근대철학에는 신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던 사유 대신 인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숙고하려는 근대의 정신이 잘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의 명제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데카르트는 중세시대에서 자명하다고 생각되던 모든 지식 체계를 인간을 중심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확고부동한 중심 혹은 그 토대를 다시 세우려고 시도했다.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토대는 바로 인간 자신이었다. 물론 데카르에게 인간의 모든 측면이 토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의 의도에 따르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만이 오직 진정한 토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생각했다. 통용되는 진리들을 모두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의 생각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고. 마침내 중세시대의 모든 지식들을 해체해서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는 확고한 토대로서 코기토, 혹은 인간 이성이 바로 이렇게 해서 그 탄생을 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신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듣는 인간에게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진행된 것으로 인문학적 과업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종교적 권위를 완전히 해체해야 하고, 나아가 정치적 권위나 경제적 권위마저 해체해야 한다. 이론적 차원에서 근대철학의 정신은 19세기 이후 인간을 제외한 일체의 권위를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의 경우 19세기는 인문정신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차원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나 "인간이 신을 본뜬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본뜬 것"이라고 주장했던 포이에르바하 Ludwig Feuerbach (1804~1872)는 종교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정치와 경제적 차원에서 억압과 착취의 메커니즘은 이미 슈티르너 Max Stirner (1806~1856), 바쿠닌 Mikhail Bakunin (1814~1876), 그리고 마르크스 Karl Marx (1818~1883)가 철저하게 폭로했던 것이 있다.


20세기 들어 반인문주의를 표방하는 적들이 인문주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게 된다. 사이비 인문학, 혹은 수정주의 인문학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교회도 다니면서 인간의 자유를 노래하는 흉내를 내거나, 부르주아 정권이나 공산단 정권에 속해 있으면서 인간의 행복을 꿈꾼다는 어용학자도 등장했다. 이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인문주의를 대학이란 제도 안에 감금시키려고 하고 있다. 나아가 현실세계에서 승리를 구가하는 억압적 체제도 자신의 승리에 취해 니체나 마르크스 등 인문정신을 책상물림이라고 백면서생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그만큼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종교적 권위, 정치적 권위, 경제적 권위 등 일체의 초월적 가치들이 횡행하고 있다. 지금 인문학이 인문학이란 포즈만 취하고 있는 사이비 인문학에 맞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도, 그리고 현실적 억압으로 작동하는 정치적 권위와 경제적 권위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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