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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Dec 06. 2019

욕망은 부정적인가? <고찰>

가장 단독적이어야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역설


들뢰즈의 주저는 사실 한 권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차이와 반복 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8년 그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 바로 ≪차이와 반복≫이다. 다양한 개념들을 이용하고 간혹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하지만 들뢰즈의 철학은 '차이'와 '반복'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차이'가 니체의 철학을 상징하는 개념이라면, '반복'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상징한다. 먼저 '차이'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강조했던 디오니소스적인 경험에 주목하자. 이것은 자신의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긍정하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반복'이란 개념은 무슨 이유로 키르케고르와 관련된다는 것일까? 키르케고르 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1843년에 ≪반복 Gjentagelsen≫이란 책을 썼던 적이 있다. 이 책에서 키르케고르는 반복이란 구체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나 잠재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실현해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바로 반복이라는 것이다. 지금 니체와 키르케고르가 동일한 이야기를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들뢰즈의 생각이었다. 반복되는 것은 차이이고, 차이만이 반복되니까 말이다. ≪차이와 반복≫이란 방대하고 난해한 책에서 들뢰즈가 논증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964년에 출간된 또 다른 책 ≪프루스트와 기호들 Marcel Proust et les signes≫에 등장하는 들뢰즈의 다음 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본질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궁극적 차이인 본질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위대한 음악은 오로지 반복되는 연주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고, 시를 외워서 암송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차이와 반복은 겉으로만 대립될 뿐이다. 우리가 ' 이 작품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라고 인식하게끔 하지 않는 작품은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 아니다."
≪프루스트와 기호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우리 개개인의 본질은 '차이'이다. 그러니까 일체의 모방이나 검열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나 우리가 만든 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본질이 '차이'이니 우리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살아내면 타인과는 다른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그의 작품은 과거 그 누구나 동시대 그 누구의 작품과도 다르게 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차이와 반복', 혹은 '반복된 차이'이다.


다른 작품과 바꿀 수 없는 차이를 드러내는 순간, 피카소의 작품은 단독성 singularité 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반전, 혹은 역설이 하나 발생한다. 그건 가장 단독적인 작품만이 가장 커다란 감동을 준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러니 묘한 역설 아닌가. 단독성을 가진 작품만이 보편성 universalité 을 가진다는 사실이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1774년 출간된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 등장하는 사랑은 단독적이어서, 현재 우리의 사랑과는 그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베르테르의 사랑에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베르테르의 사랑이 보편적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단독성=보편성'이란 기적적인 도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단독적일 때, 나는 보편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르테르의 사랑이 단독적일 때, 베르테르는 보편적인 사랑을 했던 것이다. 또한 나의 사랑이 단독적일 때, 나는 보편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일 내가 온몸으로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우리는 베르테르가 나였다면 그도 나처럼 사랑하리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반대로 괴테의 작품을 읽은 뒤 베르테르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면, 우리는 자신이 베르테르였다면 베르테르처럼 사랑을 했으리라고 느끼게 된다. 베르테르와 나는 다르다. 그만큼 베르테르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베르테르와 나의 사랑은 온몸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같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베르테르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다르지만 같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라고 들뢰즈는 말했다. 이 말은 "사랑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 있다.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단독성, 나만의 차이를 반복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나의 삶과 나의 작품은 단독성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보편성을 띠면서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우리는 ≪차이와 반복≫에 등장하는 들뢰즈의 근사한 이야기를 이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모네의 첫 번째 수련은 그 밖의 다른 모든 수련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특수자의 일반성이라는 의미의 일반성은 '단독자'의 '보편성'이라는 의미의 반복에 대립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개념 없는 단독성으로서 반복한다. 그리고 시를 마음으로 새겨야만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머리는 교환의 신체기관이지만 심장은 반복을 사랑하는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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