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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Jun 09. 2019

행복의 출발은 내가 고독하고 불행하다고 자각할 때

인간은 원래 외롭고 고독하며 불행하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왜 행복을 추구하는 걸까요? 행복하다면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저는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 보죠. 갑자기 이 세상에 나만 남게 된다고 상상해보시죠. 나를 괴롭히던 직장 상사나, 매일 잔소리하는 어머니, 비아냥거리는 친구들 등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며칠 정도는 마음이 정말 편안할 겁니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난다고 생각해보죠.


이제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합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배고프면 그냥 편의점이나 음식점에 들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되고, 추우면 옷가게에 들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나오면 됩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차를 타고 가면 되고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면 됩니다. 몇 주 몇 달 정도는 하고 싶은걸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5년 10년 20년 30년을 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맞습니다. 혼자 사는 것은 정말 외롭고 고독하며 불행합니다. 더 이상 혼자 살고 싶진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서도 살아갈 순 있긴 하지만 서로 도우면서 공존할 때 삶의 질이 더 나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죠. 자 그럼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와 보죠. 어머니의 잔소리가 귀찮다고 느껴지시나요?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의 불평이 더 이상 듣기 싫다고만 느껴지시나요?


우리는 아프거나 외롭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가장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위로를 받곤 합니다. 그런데 민감한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리기 마련이죠. 날 위로해주는 저 사람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외로운지, 슬픈지 모른다는 것을요.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가진 내면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죠. 다만 짐작할 뿐이죠. 그런데 날 위로해 주는 저 사람이 왜 이렇게 고마운 걸까요? 맞아요. 나의 내면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죠.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의 외로움이. 나의 고독함이. 나의 불행이 달래 진 거죠. 이렇게 달래주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떠나려고 할 때 "지금까지 고마웠어."라고 얘길 해야겠죠?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가 그렇게 떠나가면 우린 죽일 듯이 달려들죠. 어떻게 그렇게 떠나갈 수가 있냐면서 절대 못 떠나게 붙잡습니다. 그것이 맞는 것일까요?


인간관계란,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을 내미는 것이고, 그 사람은 잡는 것이죠. 만약 한쪽에서 손을 놓는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손을 잘라서 잡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우린 절대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죠.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죠. 이제 고마움을 느끼시나요? 홀로 남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오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외롭지 않고, 사람들이랑 있어야 한다는 이 오만을 버려야만, 우린 행복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저 나와 같이 있어주는 것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나는 외롭다 죽을 때까지 외롭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나의 고통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아파하니까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고, 내가 웃으니까 같이 웃어 주려고 해요. 그런 사람이 나한테 있다는 것이죠. 얼마나 고마운 걸까요? 당연히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것이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눈을 감을 때 그저 눈을 감는 것이고,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는 그저 태어난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태어나고 눈을 감을 감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있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고, 주변 사람들이 많아."라는 전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만 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떠날 때면 우리는 못 떠나게 하려고 상처를 줍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누군가가 나를 떠나가려고 하면,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해야 하는 것이죠. 이 얘길 하다 보면 매번 그 사람이 고마운 거죠.


만약 여러분이 아내라면, 남편이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안 들어올 수도 있었는데, 오늘 들어와서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일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우리는 보통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그것이 맞는 것일까요? 어떻게 남편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죠? 절대 못 가집니다. 우린 내면조차 헤아리지 못합니다.  만약에 남편이 일주일 동안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겠죠. 기다리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따듯한 차라도 하나 내드려야겠죠. 그리곤 들어와 줘서 고맙다고 해야겠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보통 우리는 그렇게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그 사람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린 이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내와 남편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아이도 똑같습니다. 그저 어머니에게 온 거죠. 그리고 언젠가 아이는 독립해서 떠날 때가 오죠. 그럴 땐 이러는 거죠. "지금까지 엄마랑 있어주고 가급적 엄마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타인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나는 손을 내미는 것 밖에 못하죠. 너무 고마울 뿐이죠.


기본 전재는 '나는 외롭고 고독하며 불행하다'이죠. 나의 고독을 아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끼는 거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카페에 혼자 있는 것이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그 시간에 친구가 앞에 앉았을 때, 고마운 거죠. 이렇게 친구를 만나야 되는데 우리는 대게 당연히 친구가 앞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이러면 우리는 오만 해지는 거고요. 내가 오만하면 나중엔 그 친구가 떠나려고 합니다. 왜 나면 소유당했다는 것처럼 불쾌한 경험은 없거든요. 내가 처절하게 외롭다는 것을 알아야,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들어도 기분이 좋고, 노을이 예쁠 때도 기분이 좋고, 눈이 내려도 좋은 것이죠. 나한테 잠자리 한 마리가 날려들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꽃 하나 폈을 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타인과 만나야 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행복의 출발은 내가 고독하고 불행하다는 자각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하다. 처절하게 느꼈을 때, 처절하게 느껴졌을 때만 타인과 같이 있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서야 알게 되는 것이죠. 우린 덜 외롭나 봐요. 덜 고통스러운가 봐요. 그러니까 타인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귀찮아하죠. 우리는 더 외로워져야 합니다. 더 외로워져야만 고맙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죠. 행복은 바닥까지 외로운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이 있는데, 나는 왜 행복을 잃어버린 거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외롭고, 불행하고, 고독합니다. 이것만 가슴에 새겨도, 우리들은 이제 세상에 대해 민감해집니다. 마음의 관념 조각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독을 견디는 만큼 어른이 되는 것이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금방 누군가가 떠났다고 외롭다고 심심하다고 누군가를 찾는다고 이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처럼 징징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고독의 깊이가 우리들의 성숙도의 깊이이며, 그 깊이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다음부터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시를 읽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묘하고 신비한 일이 일어나죠. 왜 우리가 책이 잘 안 읽히는지 이제 아시겠죠? 너무 어리기 때문입니다.  정말 외로운 상태에서 서점에 가보면 압니다. 책이 그렇게나 재밌다는 것을요.


수많은 인간관계 개발 책을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책 좀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왜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설명해주는 책들은 거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죠. 바로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죠. 고독은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주 강도 높게 고독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게 되죠. 그런데  고독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사랑에 빠지고, 너무 빨리 결혼을 하고, 너무 빨리 아이를 낳아버린다는 사실... 고독을 내가 감당을 해야 되는데, 그걸 우린 너무 무서워한 단말이죠.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감당해야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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