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동양적인 너무나 동양적인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도 그렇지만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1980)도 일본을 무척이나 동경했다. 왜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은 일본을 동경했을까? 사실 그들은 플라톤 이래 서양을 지배했던 이성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무언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성중심주의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상상해도 그것은 결국 이성중심주의에 포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는 서양 너머에 있는 다양한 문명권을 직접 만져보려는 열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런 갈망의 손길에 가장 쉽게 닿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일본이고 일본의 문화였던 셈이다. 20세기 초 이미 서양에서 유래한 자본주의 문명을 발전시켜 제국주의 패권 경쟁에 뛰어들 만큼, 일본은 서양과 직간접적인 접촉이 용이했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서양과 나름대로 연속성도 있고 아울러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도 유지하고 있었기에, 20세기 초나 중엽 일본은 서양 지성인들에게 중국이나 한국보다 더 접근하기가 쉬웠던 셈이다.
사망하기 1년 전, 강연을 준비하면서 바르트가 작성한 강의록을 보면, 그의 말년의 관심이 일본 특유의 시 형식인 하이쿠에 가 있다는 걸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마지막 강의록에서 바르트는 마쓰오 바쇼 松尾 芭蕉 (1644~1694)의 하이쿠를 인용하면서 이야기한다.
겨울바람이 불어대자
고양이들의 눈이
깜박댄다.
이 하이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겨울을 느끼게 합니다.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이 적은 말로'시도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무자체를 불러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준비 La Preparation du roman>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바르트가 영화를 철학적으로 깊게 숙고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쇼의 하이쿠는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칸트의 물자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극찬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하이쿠가 영화적이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겨울바람이 부는 숏(shot)이 있고, 그리고 고양이들의 깜박거리는 눈을 잡은 숏이 있다. 이 두 가지 숏이 연결되면서, 바르트가 극찬한 것처럼 "놀아울 정도로 겨울을 느끼게 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영화 제작의 핵심인 몽타주(montage) 효과가 아닌가.
1929년에 발표된 작은 논문 <영화의 원리와 표의 문자>라는 글에서 에이젠슈타인 Sergei Eisenstein (1898~1948)은 하이쿠를 이용하면서 몽타주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런 하이쿠들은 모두 몽타주 구문이고 숏의 목록이다. 단순하게 물질적인 특성을 가진 두세 개의 디테일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특성, 즉 심리적 특성을 가진 완벽하게 완결된 재현이 이루어진다"라고 말이다.
에이젠슈타인은 몽타주의 논리가 일본 문화를 지탱하는 한자 문명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물의 그림과 눈의 그림을 결합하면 '울다'를 뜻한다. 문의 그림 속에서 귀의 그림을 넣으면 듣다를 뜻한다. …… 그런데 이것이 바로 몽타주다! 그렇다. 정확하게 우리가 영화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서 묘사적이며 의미상으로 단일하고 내용상으로 중립적인 숏들을 조합해서 지적인 내용과 계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인가. 영화를 깊게 숙고하지 않은 탓에, 푸코나 바르트는 1895년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이성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영화의 잠재성을 읽어내는 데 실패한 셈이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 그러니까 오귀스트 뤼미에르 Auguste Lumière (1862~1954)와 루이 뤼미에르 Louis Lumière (1864~1948)는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만들어 상영했다. 가공할 속도를 자랑하는 열차의 질주처럼, 20세기 가장 강력한 매체로 군림하게 되었던 영화를 숙고했더라면, 돌고 돌아 일본 문화에 이르게 되는 수고로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우리는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의 영민함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동일성과 이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차이와 감성의 논리로 넘어가는 길을 찾으면서 들뢰즈는 영화에서 많은 통찰을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이성중심주의를 넘어서려고 분투했던 들뢰즈의 난해한 결과물이 영화와 관련된 두 권의 굵직한 책 <시네마 I: 운동-이미지>(1983)와 <시네마 II: 운동-이미지>(1985)로 선보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두 권의 책이 들뢰즈가 자신의 말년에 집필했던 책들 중 가장 방대한 분량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그는 '영화적인 것'에서 새로운 인식과 삶의 잠재성을 찾으려고 자신의 여생을 불태웠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들뢰즈는 영화와 관련된 주저를 시작하면서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을 숙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들뢰즈에게는 일본에 대해 별다른 동경이나 갈망을 보일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영화적인 것'의 핵심에 놓여 있는 몽타주에는 에이젠슈타인이 영화에서 찾아냈고 바르트가 하이쿠에서 발견했던 그 어떤 잠재성, 혹은 동양과 서양이 긴밀히 대화해야만 하는 어떤 쟁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몽타주라고 불리든 아니면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라고 불리든 그것은 바로 동일성의 효과는 차이 나는 것들의 마주침과 연결해서 출현한다는 입장과 관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