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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얼마나 새로운 매체인가? <고찰>

벤야민, 영화적 상상력 그리고 영화적 인문학

by 찌옹수


에이젠슈타인 Sergei Eisenstein ‎(1923~1946)

대중에게 혁명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에이젠슈타인은 서로 강렬하게 대립되는 숏을 결합시켜서 몽타주를 구상하려 했다. 그리하여 '아트락치온 몽타주'그러니까 '견인 몽타주 Montage of Attractions'가 탄생하게 된다. 1925년 상영된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은 바로 이 견인 몽타주의 강력한 유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영화의 시대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20세기의 중요한 철학자들의 이면에 에이젠슈타인이 정립했던 몽타주 이론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몽타주 이론의 핵심이 무엇인가? 에이젠슈타인의 말대로 "단순하게 물질적인 특성을 가진 두세 개의 디테일을 조합하는" 몽타주 기법으로 "또 다른 특선, 즉 심리적 특성을 가진 완벽하게 완결된 재현"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숏들에는 없는 '또 다른 특성'이란 바로 관객들의 내면에 생기는 어떤 자극과 어떤 자각이라는 점이다. 에이젠슈타인이 자신의 몽타주를 '견인 몽타주'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자신의 영화로 대중을 깨우치고 싶었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1940)

대중을 유혹하겠다는 에이젠슈타인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던 현대 철학자는 발터 벤야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그는 역사에 대해서나 정치에 대해서나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나 철저하게 '견인 몽타주'라는 방법론을 관철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아이젠슈타인이 영화에서 했던 걸 저술에서 실현했던 것이다. 벤야민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두 장면을 붙여서 역사나 사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독자의 내면에 낳고자 한 것이다. 자신의 저술에 적용된 몽타주를 벤야민은 '변증법적 이미지 dialectical image'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소비하는 인간의 모습과 공장에서 일하는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병치하는 데 성공하는 순간, 독자들은 자신이 소비자이기 이전에 노동자라는 엄연한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벤야민은 말한다.


이 프로젝트의 방법: 문학적 몽타주. 말로 할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보여줄 뿐. 가치 있는 것만 발췌하거나 재기 발랄한 표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같은 일은 일체 하지 않는다. 누더기와 쓰레기들을 목록별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으로 그것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도록 해줄 생각이다. 즉 그것들을 재인용하는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해는 무조건 역사의 시각성 Anschaulichkeit을 희생시켜야만 비로소 획득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시각성을 높이는 것과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을 관철시키는 것을 결합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길로 나가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몽타주 원리를 역사 속에서 도입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극히 작은, 즉히 정밀하고 잘라서 조립할 수 있는 건축 부품들로 큰 건물을 세우는 것이다. 실로 자그마한 개별적 계기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체 사건의 결정체를 찾아내는 것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방대한 ≪아케이드 프로젝트 Das Passsagen - werk≫라는 책에는 19세기와 20세기 초자본주의 풍경을 보여주는 수많은 인용문들과 자료들이 실려 있다. 영화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모두 일종의 독립적인 숏들의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미완의 작업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들을 결합해서 자본주의 내적 논리를 폭로할 수 있는 다양한 변증법적 이미지들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몽타주로서 '변증법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귀재였던 철학자! 인문사회 분야의 탁월한 영화감독! 그가 바로 발터 벤야민이었다.


촬영만 하고 불행히도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거장 감독이 있다고 해보자. 감독은 무슨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까? 이런 의문이 들 때 우리는 감독이 남긴 숏들로 완성된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감독이 왜 그 숏을 찍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벤야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벤야민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가 끌어모았던 수많은 인용문과 자료들로 가급적 완성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이런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단편들이 편집을 기다리는 숏들의 목록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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