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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Nov 08. 2019

그림은 어떻게 우리를 흔드는가? [로스코]

"작열하는 색들만이 비극적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세잔의 그림에서는 선과 색이 분명 함께 있다. 그러나 세잔에게는 색이 무엇보다도 일차적이다. 색들이 맞닿아 있을 때, 윤곽선이 나온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가령 보색 관계에 있는 두 색들이 연결되어 있다면 윤곽선은 더 짙을 것이고, 반대로 연접해 있는 색들이 맞닿아 있다면 윤곽선은 상대적으로 흐릿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예 윤곽선 자체를 부정하고 색만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움직임이 생기게 된다. 어쩌면 세잔의 인상주의가 열어놓은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화풍이 나온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를 일이다. 선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데생이 사실주의를 따른다면, 화가 개개인의 내면적 감정과 무의식적 욕망을 폭발하는 데는 역시 색이 일차적일 테니 말이다. 특히나 이런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 회화의 중심지로 거듭난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발달한다. 바로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의 등장이다.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1912~1956)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1912~1956)의 그 유명한 액션 페인팅 action painting을 예로 들어보자. 그의 그림은 그냥 붓을 유화 물감통에 담갔다 꺼내자마자 스튜디오 바닥에 깔린 커다란 캔버스 위에 휘두른 것이다. 정말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붓을 거의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으로 휘두를 뿐이다. 10분 정도 지나서 캔버스를 보면 정말 화가의 바닥 없는 무의식과 욕망들이 색들의 향연, 혹은 색들의 난장판으로 펼쳐진다. 그나마 유럽의 표현주의에서는 확인 가능한 윤곽선이라도 있었다면, 미국의 표현주의에서는 그것마저 희미해지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윤곽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물감의 색깔이 번지는 지점까지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될 뿐이었다. 그러니 화가의 내면을 표현한다는 '표현주의'라는 용어에 '추상'이란 용어가 덧붙여져, 추상표현주의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

1950년대 뉴욕을 장악했던 추상표현주의 운동에서 특이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화가가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라고 할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그가 '표현'보다는 늘 '소통'을 강조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표현 self-expression'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세계에 대한 '소통 communication'입니다. 이런 소통 뒤에 세계가 납득이 된다면, 세계는 변하게 될 것입니다.
<프랫인스티튜트 연설문 Lecture at the Pratt Institute>


방금 읽은 구절은 1958년 완숙기에 접어든 로스코가 자신의 회화를 정의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로스코는 그림이란 작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한다. 놀라운 일이다. 지금 로스코는 자신에게 부가된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라는 라벨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려고 그림을 그렸던 것이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그림을 통해 말라버린 사람들의 감성을 되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소통'이란 단어를 그가 그렇게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로스코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사람이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러시아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주의의 광풍을 온몸으로 맞았던 사람 아닌가.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고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공멸하고 말 것이다.


불행히도 고압적인 강요나 지적인 설득만으로 살마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의 경직된 감성, 아니 거의 화석이 되어버린 감성을 활성화해야만 한다. 타인을 죽이려면, 타인에게 비참과 고뇌의 낙인을 찍으려면, 우리는 그의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감성의 활성화! 결국 타인에게 공감한다면, 우리는 그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적인 설득이 아니라 감성적 울림이다! 지성은 머리에만 머물지만 감성적 울림은 우리 실존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법이다. 로스코는 바로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소통! 그것은 로스코 본인의 생생한 감성을 관객들에게도 전하는 것이다. 1957년에 출간된 ≪예술가들과의 대화 Conversations with Artists≫라는 인터뷰집에서 로스코는 말한다.

"나는 기본적인 인간적인 감정들, 즉 비극 tragedy,  환희 ecstasy, 그리고 숙명 doom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내 그림에 직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저앉아 운다는 사실은 내가 그런 기본적인 인간적 감정들을 '소통시켰다 communicate'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소통'을 강조했다고 해서 로스코가 '표현'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이미 1941년에 집필된 <창조적 충동의 충족 The satisfaction of the creative impulse>이라는 짧은 글에서 로스코는 말했던 적이 있다. "예술은 '표현적일 expressive'뿐만 아니라 동시에 '소통적이기 communicable' 때문에, 이런 소통 가능성이 예술에 사회적 기능을 부가하는 것이다"라고. 온 삶이 멍드는 것처럼, 슬플 때 우리는 그걸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들은 내가 얼마나 슬픈지 알 수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슬픔을 표현하느라 이죽이죽 웃고만 있다면, 누가 나의 슬픔을 제대로 알겠는가. 아마도 내게 즐거운 일이 있다고 오해하며 타인들은 덩달아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표현은 했지만 소통은 실패한 것이다. 제대로 자신의 감정이 전달되도록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슬픔에 공명해서 슬픔에 빠질 수 있도록, 우리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럴 때 예술가는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로스코에 대해서만큼은 추상표현주의라는 라벨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라벨을 붙인다면 '소통표현주의 communicative expressionism'라는 신조어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제 로스코에게 남은 문제는 하나다. 어떻게 표현해야 관객들과 자신의 감정을 잘 소통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인상주의의 대가 마티스가 로스코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주었는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1949년 뉴욕의 현대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인상주의의 대가 마티스의 1911년 작품 <붉은 아틀리에 L'Atelier Rouge>를 영구히 전시하게 된다. 1949년 수개월 동안 로스코는 미술관을 찾아 <붉은 아틀리에>만을 응시했다고 한다. 로스코는 마티스의 작품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색 사용법을 배웠던 것이다. 1988년 10월 12일에 이루어진 어느 인터뷰에서 그의 제자 셀리나 트리프 Celina Trief는, 마침내 색의 비밀을 알아내서 감동했던 스승 로스코의 육성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그림을 응시한다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마티스만이 아니라 화가로 성장할 때 로스코는 세잔에게서 아주 강한 영향을 받았던 적이 있다. 1934년에 집필된 ≪휘갈겨 쓴 책 Scribble Book≫을 보면, 마티스에게 영향을 받기 전에도 로스코는 색을 강조했던 세잔의 입장에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는 그림이 드로잉에서 시작된다는 관념을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색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로스코는 인상주의를 있는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는다. 색들이 대조되면 윤곽선이 드러난다는 세잔의 생각을 다시 떠올려보자. 일상적 의미에서 윤곽선은 사물을 식별하게 만드는 지적인 요소이고, 색들은 화가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감성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들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당연히 이차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지라도 윤관선의 요소를 제거해야만 한다. 윤곽선은 계속 감정 소통을 막는 지적 요소라는 장애물로 작용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색들이 대조되는 경우 저절로 드러나는 윤곽선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데, 그리고 그것도 기가 막힌 반전을 가진 해법을 마련했다는 데, 로스코의 천재성이 있다. 색들이 더 강하게 대조될수록, 윤곽선은 더 검고 짙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윤곽선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밝게 만들어질 수 있다면, 관객들은 윤곽선을 자각하지 못하고 색들만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색들이 대조되어 윤곽선이 드러나는 순간, 그 색들 사이의 공간에 태양처럼 작열하는 빛이 쏟아지게 만들면 된다. 태양을 보다 눈이 부신 사람들처럼 관객들은 색들로 시선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마티스의 그림이 가르쳐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중퇴하긴 했지만 예일대에서 인문학을 공부했던 경험도 윤곽선의 자리에서 윤곽선을 제거하는 기법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바로 니체가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아폴론은 조각의 신이리라.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또한 빛의 신이다. 작열하는 광채로부터 모든 것들은 빛을 받는다. 그런데 광채의 강도가 지나치게 세지면 이제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게 사라져 버린다. 이게 바로 내가 작열하는 빛에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포함하려고 사용한 비밀이다.
<기록 카드 Notecards 1950-1960>


젊은 시절 로스코가 허리춤에 끼고 살았던 니체의 저작이 바로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구분한다.

"광란의 바다 위에 뱃사람 하나가 자신이 탄 보잘것없는 조각배를 믿고 의지하면서 그것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고통의 세계 한가운데에 인간 개개인은 개별화의 원리를 믿고 의지하면서 고요히 앉아 있다. 그 원리에 사로잡혀 있는 자가 그것을 굳건히 신뢰하면서 고요히 앉아 있는 자세가 아폴론의 형상에 가장 숭고하게 표현되어 있다. …… 갑자기 현상의 인식 형식에 대한 신뢰를 상실할 때 엄청난 전율이 사람들을 엄습하게 된다. 개별화의 원리가 이런 식으로 부서지면, 인간의, 아니 자연의 가장 깊은 근저로부터 환희에 찬 황홀감이 용솟음친다. 앞에서 언급한 전율에 이런 황홀감을 덧붙일 경우에 우리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아폴론적인 것개별자나 분리의 원리라면, 디오니소스적인 것개별화의 원리가 사라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니체의 생각을 로스코의 말로 바꾸면 아폴론적인 것이 윤곽선의 원리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윤곽선을 제거하는 원리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로스코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참고로 1956년 로스코의 전성기 그림 <샤프란 Saffron>을 보라. 오렌지색 덩어리들 사이에 오렌지에 물들어 작열하며 전율하는 빛을 보라. 여기서 오렌지색 덩어리들이 아폴론적인 것이라면, 색 덩어리들 사이의 작열하는 빛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윤곽선의 자리에서 윤곽선이 발생하는 걸 막으려는 로스코의 시도가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로스코의 그림 속의 색 덩어리들은 둥둥 떠다니며 마침내 관객들의 마음에 깃드는 것이다. 그 색들이 슬픔의 색이면 관객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릴 것이고, 그 색들이 환희의 색이라면 관객들은 희열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사실 색과 색 사이의 윤곽선에만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모든 윤곽선들이 문제가 될 테니 말이다. 화가와 그림 사이의 윤곽선! 그림과 관객 사이의 윤곽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곽선! 색과 색 사이의 윤곽선이 무너져야 색들은 감정을 전달하는 힘을 갖게 될 것이고, 화가와 그림 사이의 윤곽선이 무너져야 화가의 손은 그림의 색과 하나가 될 것이고, 그림과 관객 사이의 윤곽선이 무너져야 관객은 색에 젖어 화가가 전하려는 감정에 공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곽선도 붕괴되어야 한다. 화가는 화가이고 관객은 관객이라는 아폴론적 원리가 붕괴되고 디오니소스적인 공명이 발생하는 순간, 화가, 그림, 그리고 관객은 하나의 감정으로 묶이게 된다. 바로 이 순간 인간을 갈라놓는 인종주의, 인간을 구획 짓는 전체주의, 그리고 인간을 경쟁시키는 자본주의마저 녹아버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로스코의 그림은 감정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 무의미해져 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해 화가와 관객이 소통하는 순간, 그림은 망각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오래된 지혜가 떠오르지 않은가?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야 한다는 지혜 말이다.


로스코는 그림의 힘이 색에 있다는 것, 그리고 색은 소통을 위한 최고의 매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무엇보다 색채로 세상을 느낀다. 나아가 색채만큼 우리 인상을 자극하는 것도 없는 법이다. 밋밋한 석양보다 화려하고 장엄한 일몰 풍경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색만이 우리의 인상을 사로잡을 수 있고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상주의다. 그러나 세잔이 말한 것처럼 색들을 다루는 순간, 우리는 그 색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윤곽선도 바라보게 된다. 윤곽선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사실주의가 표방하는 '재현'의 논리에 포획되기 쉽다.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라는 가치 판단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 혹은 인상을 제대로 표현했는지가 관건인데도 말이다. 인상주의에서 사실주의로 퇴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윤곽선, 즉 선 일반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클레가 선마저도 재현의 매체가 아니라 표현의 매체로 만드는 법을 고민했고, 로스코가 윤곽선이 발생한느 바로 그 장소에서 그것을 무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클레가 선도 작가의 감성을 표현하는 매체로 만들었다면, 로스코는 윤곽선을 제거해서 색채로만 자가의 감성을 표현하는 기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선과 색이 아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더 강력한 표현의 매체가 되도록 고민했던 화가 한 사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909~1992)이란 아일랜드 출신 화가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려고 베이컨이 생각했던 방법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테이블 위에 붉은 사과가 놓여있는 그림이 있다고 하자. 우선 이 붉은 사과의 윤곽선을 늘이거나 뒤틀어 버린다. 이런 변형이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처음의 붉은색을 칠할 수는 없는 법이다. 뒤틀리고 변형된 만큼 그에 어울리는 짙은 브라운 계열의 붉은색을 칠해야만 한다. 형태의 변형은 색의 변형을 낳고, 색의 변형은 형태의 변형을 낳는다! 이것이 베이컨의 속내였다. 물론 그렇다고 베이컨과 클레가 유사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두 사람은 표현적 효과를 위해 데생 작업과 색채 작업을 모두 강조했다. 그렇지만 클레에게 선과 색은 독립성을 유지한 채로 공명해서 감정을 표현했다면, 베이컨에게서 선과 색, 아니 정확히 면과 색은 내적 필연석으로 묶여서 표현력을 배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변형된 모양과 변형된 색은 클레나 로스코보다 더 강렬한 정서적 자극을 우리에게 주는 경우가 있다. 하긴 뒤틀린 사과,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 내장들, 완전히 뒤로 말려져 버린 양팔 등등도 얼핏 불쾌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강한 자극을 주는데, 여기에 이런 불쾌한 모양들에 걸맞은 색마저 더해지니 정서적 충격은 두세 배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52년 ≪타임 Time≫에 실렸던 인터뷰에서 베이컨은 말한다.


미술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느낌의 영역을 열어놓는 방법이다. …… 그래서 그림은 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사건의 재창조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대상과의 투쟁이 없다면, 그림에서는 어떤 긴장도 없을 것이다.
≪타임≫


사과의 뒤틀림 등과 같은 위상학적 변형이 바로 사건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경찰에게 얼굴을 맞게 되면 얼굴은 변형되고 그 변형된 얼굴에는 파란 멍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사건이다. 베이컨은 그림에서 사건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고, 그러니 대상의 위상학적 변형은 불가피한 것이다. 당연히 그에 맞게 색의 변형도 수반되어야 한다.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화가의 내면과 화폭에 나타나는 대상의 변형이 바로 그가 말한 대상과의 투쟁인 셈이다. 클레의 표현을 빌리자면 베이컨은 "가시적인 것들 이면에 있는 실재"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가시적인 것은 익숙한 것이고, 당연히 그것은 화가나 관객에게 어떤 긴장도 제공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클레, 로스코, 그리고 베이컨 중 누가 우월한가? 이런 질문은 사실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오히려 어떤 작가의 그림이 우리에게 느낌의 영역을 열어놓는지가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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