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존재로 산다는 것
삶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정답을 고르는 법은 배웠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무지에서 질문을 시작하는 법은 잊어버렸다.
학교는 질문 대신 정답을 요구했다.
질문은 지워지고 정답만이 정답이 되는 세상.
하지만 삶은 시험지가 아니다.
정답은 빠르다.
질문은 깊다.
정답은 마침표지만,
질문은 여백이다.
그 여백에 우리는 머무르고, 흔들리고, 다시 묻는다.
왜 나는 항상 불안할까?
이 일이 정말 나다운가?
이 질문에는 점수도 해설도 없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글이 시작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란 문제를 품는 행위다
정답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오래 바라보는 것.
사람들은 글쓰기 기술을 묻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기교가 아니다.
'왜 이 글을 써야 했는가.'
질문이 선명한 글은
감정의 미세한 떨림에서 출발한다.
잘 쓴 문장보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내 안에서 떠오른 생경한 물음이다.
질문은 방향이다.
나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삶의 궤도를 재설정한다.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질문은
내가 따르고 있던 보이지 않는 게임의 규칙을 흔든다.
질문은 단지 선택이 아니라,
의식의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힘이다.
(참조: 다니엘 슈마흐텐버거)
글을 쓴다는 건
의식을 선으로 엮는 일이다.
나의 세계관, 경험, 감정...
그 모든 것이 한 줄의 질문으로 응축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가?
그 물음 안에 나의 존재가 있다.
질문은 존재를 구성한다.
글은 그 흔적을 기록하는 도구다.
글쓰기의 본질은 정답 회피가 아니라, 질문 지속이다.
AI도 훌륭한 문장을 쓴다.
그러나 질문은, 글쎄다.
AI는 배운 것을 정리하지만,
인간은 살아낸 것을 질문한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제를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다.
그 질문은 명확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그 질문이 당신으로부터 나왔느냐다.
오늘 하루, 멈칫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왜 생겼는가?
그 감정은 어떤 질문으로 바뀔 수 있는가?
그 한 줄의 질문이면
글의 출발점은 이미 마련된 것이다.
나는 오늘, 어떤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는가?
그 물음 앞에서 문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질문이야말로 당신을 쓰게 하는 힘이다.
정답을 쓰려다 멈춘 글은 많다.
하지만 진짜 글은
정답이 아니라 문제로부터 태어난다.
질문은 의식의 궤적을 남긴다.
그 궤적은 누군가의 삶에
사유의 문을 연다.
요즘 당신을 멈추게 만든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그 질문은 지금 당신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요?
오늘, 당신의 글은 어떤 물음표에서 시작되나요?
필명 | 정각(正覺):
문제를 바르게 꿰뚫고,
삶을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