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기반의 질문 전환법
어느 날은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정답이 있는 시험처럼 삶을 해석하려는 이 질문은
익숙하고, 계획적이며, 효율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답해도 마음 깊은 곳이 납득하지 않는 날이 있다.
왜일까?
그 질문은 나를 행위하는 주체가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역할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방향 전환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질문의 형태가 달라지면 사고의 축이 바뀐다.
무엇을 할까?에서
나는 누구로 존재하고 싶은가?로 넘어갈 때,
사유는 더 이상 선택과 효율이 아닌
방향성과 자기 일치감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직업, 수익, 역량 같은 외적 요소보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태도, 말투, 감각이 먼저 떠오르는 질문.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흐르고 있는가?
많은 사람은 일의 효용성, 경제성, 외부 평가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더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일을 하는 나 자신이, 내 안의 나와 연결되는가?"
정체성은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내가 나와 일치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생겨난다.
살아 있는 느낌은 언제나 그 일의 본질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나의 상태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사용하는 말로 사고하고
사고한 방식으로 자기를 정의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는 생각의 틀을 만들고
그 틀은 곧 정체성의 골격이 된다.
글쓰기는 그 언어를 의식적으로 연습하고 구현하는 공간이다.
나는 어떤 표현으로 감정을 해석하고 싶은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어떤 어휘로 가치관을 설명하는가?
문장 하나, 어조 하나, 표현의 결 하나에도
지향하는 존재의 조각이 담긴다.
지금 나는 누구의 말결을 따라 살고 있는가?
정체성은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지속되는 리듬 속에서 구성된다.
한 번의 결단보다 반복되는 행위가 우리를 형성한다.
이 일이 나를 보여주는가?보다는
이 일을 꾸준히 지속할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화하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은 처음부터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복해서 써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자기 언어로 자기 인생을 다시 써 내려가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어를 조합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묻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다.
무엇을 써야 할까?는 실행의 질문이다.
하지만 더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문장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일치하는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조율하고, 설계하며, 다시 그려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삶을 결정짓는 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되고 싶은 존재의 감각이다.
무엇을 할까보다
누구로 살아가고 싶은가.
질문을 바꾸는 순간
글은 목적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 된다.
필명 | 정각(正覺):
문제를 바르게 꿰뚫고,
삶을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