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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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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r 05. 2019

눈 오는 날 등산

세상은 나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작심삼일은 마음의 문제일까. 세상은 나의 새로운 사람되기 프로젝트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 달 내내 도서관가기를 목표로 삼은 적이 있다. 작심삼일을 하지 않으려는 다짐으로 첫날에는 도서관 오픈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나갔다. 텅 빈 열람실을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침 일찍 오는 사람은 나뿐인 줄 알았는데 곧이어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다음 날에도 똑같이 나갔다. 세 번째 날에도 계획은 무리없이 지켜졌다. 일주일 정도 도서관을 출입하면서 이번 한 달은 뿌듯함과 성취감을 맛보며 마무리할 수 있겠다며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날씨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폭우였나, 태풍이었나.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해보기 망설여질 정도로 심각한 기상 악화를 맞이했다.


날씨는 며칠 동안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도서관 가기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었다.




올해 저질 체력 극복을 위해 일주일 동안 매일 등산하기를 목표로 삼았다. 도서관 가기처럼 한 달 내내 할 수 있는 목표를 찾자니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흐지부지 될 위험을 생각해 일주일로 날짜를 변경한 것이다. 일주일을 잘 버티면 다음은 이 주일, 한 달, 이런 식으로 늘려가겠다는 은근한 포부도 있었다.


밥을 든든하게 먹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주머니는 무겁지 않게 비우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1시간 30분이면 왕복할 수 있는 낮은 산을 목표로 간단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허벅지, 종아리, 발목이 땡겼다. 뻐근한 근육은 운동으로 풀어야지! 발랄한 생각으로 다음 날 또 등산을 했다. 사람들은 5분에 한 명씩 마주칠 정도였고 날씨는 춥고 몸은 아팠으나 뿌듯했다. 걸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도 하고,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지난 날을 추억하기도 하면서 등산을 선택한 건 꽤 괜찮은 결정이라 여겼다.


다음 날 아침 눈이 왔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자주 오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왔다. 하필 그 날. 아침부터 고민을 했다. 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 가기에는 전문 등산화가 없어서 신발이 미끌어질 것 같았고, 산에 사람도 없어서 다치기라도 하면 혼자 절뚝거리며 내려올 상상을 하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하지만 엄청 높은 산도 아니고, 이대로 하루를 또 날려버리자니 이틀 산을 탄 시간이 아깝다는 마음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했다.




오후에 눈이 그치고 해가 떴다. 옷을 챙겨 입고 산으로 갔다. 해가 떠서 갔다기보다 마음이 불안해서 출발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에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산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도 몇 보였다.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다녀간 발자국


길은 햇볕과 몇 명의 사람들이 이미 지나간 덕에 드문드문 녹은 곳이 있었다. 물론 미끄럽고 다른 때보다 조심하며 내려와야 했지만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챙겨 입고 나오면서 내가 제일 먼저 소복히 눈 내린 산을 탈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산에 도착해 나보다 먼저 산을 다녀간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세상은 나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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