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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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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r 02. 2020

300원짜리 행복

떡볶이를 먹고 있어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에 적힌 세트 메뉴를 보며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천 원으로 배부르게 먹고도 남았는데 이제 천 원으로는 어림도 없구나.


요즘은 프랜차이즈 간판을 걸고 건물에 입점한 떡볶이 가게가 많지만 내가 어렸을 적 자주 가던 집은 상가에 입점한 곳이 아니었다. 오픈 시간도, 영업을 끝내는 시간도 알 수 없지만 지나가다 보면 언제나 장사를 하고 있던 트럭에서 떡볶이를 자주 사 먹었다. 떡볶이 트럭은 아파트 단지를 지나 공원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었다. 정류장 근처라 때때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어묵이나 떡볶이를 사 먹었다.


트럭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떡볶이, 어묵, 튀김 등 평범했는데 여름에는 트럭 옆에 바퀴 달린 하얀 직사각형이 등장했다. 투명한 뚜껑을 내려다보면 바닐라와 초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바닐라 맛이요! 주문과 함께 300원을 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은 콘 위에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올려주셨다. 세게 쥐면 콘이 부서져버릴까 봐 최소한의 힘으로 아이스크림을 받아 쥐었다. 천천히 달콤함을 핥다가 아이스크림이 손목을 타고 흐르면 나는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입에 넣고 근처 수돗가를 찾기 바빴다.


아이스크림을 300원에 판매했던 그 시절에 내가 자주 사 먹었던 건 컵떡볶이였다. 컵떡볶이 하나요! 주문을 하면 아주머니께서 두 개를 겹친 종이컵 안에 기다란 밀떡을 국자로 퍼서 넣어주셨다. 어떻게 국물 한 방울 밖으로 흘리지 않고 담으시는지, 떡이 컵으로 쏘옥 빨려 들어가는 게 참 신기했다. 아주머니의 손저울을 통해 중량이 부족할 때면 국자에 떡 두세 개를 더 떠서 컵에 넣은 다음 건네주셨다. 그러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흘리지 않게 컵을 받아 들고 떡꼬치용 꼬치를 하나 집었다. 컵떡볶이는 이동하면서 먹는 맛이라 절대 트럭 앞에 서서 먹지 않았다. 목적지가 있으면 걸으면서 먹었고 아니면 근처 공원을 서성이며 컵을 비웠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신발장 근처에 비스듬히 세워두고 방으로 따라 들어가 컴퓨터 게임을 했다. 몇 분이 지나을까 친구는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며 서둘러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주방 서랍을 열어 동전을 긁어모았다. 작은 손바닥에 50원, 100원짜리 동전이 무겁게 쌓였다. 친구는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손을 오므린 뒤 자기 청바지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었다.


떡볶이 500원어치 주세요! 저 하나 얘 하나요! 아주머니께서 연두색 바탕에 흰 점이 찍힌 플라스틱 접시에 비닐을 씌우고 떡볶이를 퍼서 친구와 내 앞에 놔주셨다. 매워서 헥헥거리며 물을 마시면서도 접시에 올려진 내 몫을 천천히 비웠다. 200원을 더 지불했을 뿐인데 줄지 않는 양에 친구와 서로 놀라워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지는 건 같이 떡볶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니 여기서는 쥐포도 팔았다. 한입 베어 물면 질겅질겅 입 속에 맴돌다 삼켜지는 식감이 아니라 과자처럼 바삭바삭한 식감을 지닌 쥐포였다. 그땐 쥐포의 맛을 몰라서 항상 먹는 메뉴만 먹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천 원을 아낌없이 쓰고 싶다. 떡볶이로 배를 채우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몇 백 원을 더 투자해 쥐포를 손에 쥐고 트럭 앞을 떠나야지.


떡볶이를 먹으면 이때의 기억이 세트처럼 따라온다. 그럴 때면 떡볶이를 먹고 있어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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