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번의 헌혈과 두 번의 해프닝
서른세 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나이. 연애하기 가장 좋은 나이라지만 실감은 안 나는 나이. 홀로 나이 들어버린 형들에 따르면 필사적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 뭐 어쨌거나 적은 나이는 아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십 대 중후반의 사람들과 사담을 나눌 때면 ‘누구님은 젊으시니까요’, ‘제가 누구님 나이 때는’ 등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굳이 그 차이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난 영락없는 아저씨다.
얼마 전 50번째 헌혈을 했다. 금장과 헌혈유공장을 받았다. 상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상을 받아서 겸언쩍었다. 30번째 헌혈을 할 때만 하더라도 난 대학생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신 탓에) 그땐 돈이 별로 없었다. 한창 쪼들릴 때는 돈이 없어서 라면을 먹거나, 자취방 앞 봉구스에서 스팸 밥버거 대신 일반 밥버거를 먹었다. 그런 형편에 영화관 티켓은 상당히 큰 지출이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싶었고, 그래서 헌혈을 했다. 2달을 쉬어야 하는 전혈보다 2주면 쿨타임이 도는 혈장, 혈소판을 더 많이 했다.
헌혈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난 그동안 많이 했지만, 누군가와 헌혈을 주제로 대화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주위에 헌혈을 한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물론 거기서 대화 소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운동이 주제라면 얼마든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그 운동을 시작했는지,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월에 비용은 얼마나 들며 즐거움이나 힘듦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등등. 하지만 ’ 전혈이 좋으세요, 혈소판이 좋으세요?’나, ‘사은품으로 영화 티켓이나 문화상품권 중에 뭘 선호하세요?’와 같은 질문들은 이상하고 부적절하다. 이런 건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공허한 질문조차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50번 헌혈을 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작은 해프닝들이 있었다. 홍대입구 롯데시네마가 있는 건물의 헌혈카페에서 전혈을 마친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난 종종 쓸데없이 무리하게 시간을 아끼곤 하는데, 햇반이 다 되기 3초 전에 전자레인지를 연다거나, 시간이 많은데도 무리하게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는 식이다. 그날도 그랬다. 뒤로 바쁜 일은 전혀 없었지만, 휴식하는 10분을 아끼고자 헌혈이 끝나자마자 압박밴드를 풀고 자리를 떴다. 백화점을 막 빠져나가려는 찰나에 누가 뒤에서 작게 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보니 바닥에 피가 흥건했고 내 손은 축축했다. 뜨끈뜨끈한 혈액이 팔을 타고 줄줄 흘러 1층 유니클로 매장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똑, 똑,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뚜둑, 뚜두둑, 거리면서. 어디선가 배운 대로 팔을 심장보다 높게, 마치 부모 말을 잘 따르는 유치원생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 이제 피는 어깨를 타고 내려와 흰색 티셔츠를 적시기 시작했다. 난 왔던 길을 돌아가 방금 뽑은 피를 그대로 몸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티셔츠가 엉망으로 젖은 탓인지 간호사들도 나만큼 놀란 것 같았다.
최근에도 하나 있었다. 50번째 헌혈을 하고 나서 며칠 후에 혈액을 폐기했다는 연락이 왔다. 간수치인 ALT가 간염이나 간경화 환자들 수준으로 높다면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복부초음파를 찍었는데 다행히 별다른 건 없어서 간장약을 처방받았다. 지금은 의사의 조언대로 단백질 섭취를 좀 줄이고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어쩌면 헌혈을 한 덕분에 몸의 이상을 재빨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게 영화 티켓보다 오히려 더 좋은 혜택으로 느껴졌다. 코로나 이후로 혈액이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헌혈자를 위한 보상으로 여행용 파우치나 KFC 5천 원 쿠폰보다, 차라리 무료 건강검진을 조금 더 폭넓게 제공하고 홍보하면 어떨까. 혈액은 검사를 해주니, 소변 검사만 추가해도 꽤 여러 가지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 텐데.
이 두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지난 10여 년간 헌혈을 하며 기억할만한 사건은 별로 없었다. 그건 그것대로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