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민 Mar 05. 2023

I fall in love too easily

다시, 독립 (2)


하지만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작은 방을 나는 벌써 좋아하고 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내가 다니는 요가원이 길 건너다. 샤워도 쉽고, 무엇보다 복장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편리하다. 광교에 살 때에는 출근길에 반드시 반팔티와 반바지를 챙겨야 했다. 그걸 까먹으면 요가원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빌렸고, 빌린 옷을 미처 반납하기도 전에 또 까먹으면 (덤벙거리는 성격이라 상당히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날은 요가를 할 수 없었다. 이사 후엔 그런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또 주말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프라이머리 풀시퀀스 수업이 있다. 그걸 다 하는 데에는 보통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1시간 단위로 진행되는 평일 수업에서는 일부 동작을 빼고 한다. 그동안 주말 수업은 감히 도전해 본 적이 없었다. 광교에서 강남까지, 왕복 세 시간을 쏟을 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이사를 하고 나서는 두 번의 토요일 모두 놓치지 않았다. 아침엔 몸이 더 뻣뻣하게 굳어 있어서 정말이지 무진장 힘들었지만, 아, 좋았다. 요가를 끝내고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은 특별했다.


가만히 바라보며 공상할 수 있는 창 너머의 풍경도 매력 중 하나다. 건너편은 고가 아파트 단지다. 내 방의 월세는 직방에 있지만, 건너편 집의 매매가를 보려면 호갱노노를 켜야 한다. 방금 조회해 보니 26억이다. 잠시 세상이 미쳐 돌아갔던 일 년 전보다 무려 6억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금액이다. 저기에 거주하기 위해 나는 과연 몇 번의 여행과 택시와 위스키를 참아내야 하는 걸까. 별로 계산해보고 싶지도 않다. (검소함으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사실 계산할 필요도 없긴 하다.)


내 방에서는 그 값비싼 아파트 단지의 면면이 마치 부처님 손바닥처럼 훤하게 보인다. 보고 싶지 않아도 어떤 집들은 거실까지 훤히 보인다. 단지 내에 양로원과 놀이터가 있지만 대체로 한산하다. 길 건너로 초등학교와 거기 딸린 운동장이 있다. 종종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차는 걸 보면서 나는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한다.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저들의 삶과 나의 삶은 얼마나 다를까. 아니면 얼마나 다르지 않을까.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는가. 그들은 혹시 나를 부러워할까. 개당 26억씩 하는 창문, 수백 개의 창문을 보며 일과 돈과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아주 금방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