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공포, 드라마 <체르노빌>

1986년 소련에 무슨 일이 있었나

by 전하민

공포의 두 가지 유형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며 익숙한 두 유형의 공포를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경험한다. 첫 번째는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다. 외계인이나 좀비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본인을 괴롭히는 존재의 정체와 대처법을 모르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다행히도 이런 위험은 대부분 스크린 안에서만 유효하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아니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2분

소비에트 연방 키예프 주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관이 출동했고, 발전소의 책임자들은 작은 폭발 사고일 뿐 원자로에는 이상이 없다며 상부에 보고했다. 폭발로 잠이 깬 몇몇의 사람들은 다리 난간에 기대어 폭발이 만들어낸 오묘한 빛기둥과 눈처럼 날리는 재를 보며 즐거워했다. 이들은 전혀 몰랐다. 자신들이 원자 폭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순박한 표정은 우리와 닮았고, 그래서 이 공포는 스크린 밖에서도 유효하다. 좀비는 끔찍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지만 방사능은 아니다. 방사능에 노출된 직후 화상이나 구토 증세를 보일 정도라면 그 사람은 몇 주 후 죽는다. 그리고 겉보기엔 멀쩡하더라도 피폭되는 양에 따라 수명이 극단적으로 단축된다. 이토록 위험한 방사능을 품은 원자력 발전소가 우리 지척에 널려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모두 무서워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인간은 먼 예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과 싸워 왔기 때문이다. 방사능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원자로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으며, 방사능을 측정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는 장비도 있다. 그럼에도 <체르노빌>이 공포스러운 이유는 두 번째 유형의 공포와 연관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에 대한 공포다.



거짓말하는 인간

체르노빌 발전소가 폭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엔지니어가 미숙해서? 원자로의 설계가 잘못되어서? 책임자가 무능해서?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거짓말'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 실패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당의 명령은 불가역적이었고, 달성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따랐다.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원자력 발전소는 전쟁, 지진 등의 비상시에도 원자로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당에서 요구한 납기를 맞추기 위해 허위로 안전 검사 완료 서명을 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소장을 포함한 관리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해서라도 안전 검사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들은 눈과 귀를 닫았다. 폭발을 막을 기회가 수 차례나 있었지만 검사를 강행했다. 심지어 사고가 난 후에도 원자로 노심에는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잃지 않아도 될 목숨을 잃었다.



성과에 눈멀어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말을 일삼은 - 그래서 나중에는 진실을 알아볼 수 조차 없게 되어버린 - 인간은 공포스럽다. 그들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들이 주는 공포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나 <올드보이>식의,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을 되갚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주는 공포와 다르다. 훨씬 일상적이다. 원자력 발전소처럼 극단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괜찮겠지'와 '아닐 거야'를 반복하며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 심지어 어쩔 땐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나와 상대를 속이고 상황을 모면하면서 점차 진실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전대미문의 참사에도 희망은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를 수습하려다 사망한 발전소의 엔지니어들, 광부와 노동자들과 몇몇 정치인 덕분에 피해가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또 수많은 과학자들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외부에 공개한 덕분에,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원자력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우리나라도 전체 전력의 30% 정도를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다. 나는 스마트폰을 TV에 연결하여 왓차플레이로 이 드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 편리함에는 그들의 지분도 분명히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 집, 핑거푸드 참 잘하네